동아알루미늄 주식회사 (DAC) 의 본사 건물에 들어서면 마치 거대한 호텔 로비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3층에 이르는 높은 천장은 대형 회화 작품들과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각 작품들이 잘 어우러져 있는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곳은  누구나 상상하는 알루미늄 튜브와 폴을 만드는 공장의 입구가 아니라 아트 갤러리이다.  그리고 3층으로 이루어진 공장건물에는 각층마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튜브들은 다른 생산업체들을 비롯한 많은 텐트 디자이너들이 한때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믿어왔던 여러 문제들의 해결 방안을 담고 있다.

DAC 본사는 공장이라기 보다는 미술관 같은 느낌이다 (사진 제공: 라 회장)


”나는 좀 이상한 사람인가 봐요,” 67세의 라 회장은 푹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제  아내는 항상  ‘당신은 평범하지 않아요’ 라고 말해왔어요. 작년이 되어서야 제가 수긍했지요.  ‘그래요,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여태 해온 일들은 일상적인 범주에 속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네요.”

라 회장이 평범한 것을 추구하는 일상을 살아왔다면 텐트 산업은 우리가 현재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 회장이 개발한 알루미늄 합금 – TH72M (짧게는 M이라고 함) – 은 폴의 강도를 유지하면서도 그 두께를 얇게 하여 백패킹 텐트의 무게를 줄였다.  그가 고안한 알루미늄 허브형 커넥터는 텐트 구조의 혁신을 가져왔고 전혀 새로운 텐트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디자인 추세는 현재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라 회장은 텐트의 기하학적 구조를 단순화한 구조물의  한계를 넓혔다.

“Jake Lah 는 거의 30년에 걸쳐 커튼 뒤에서 우리 업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REI에서 28년간 일하다 은퇴한 텐트 디자이너 데이비드 마이단스의 말이다.  가벼운 무게, 넓은 실내 공간, 개선된 통풍 – 캠핑이나 백패킹용 텐트에 이루어진 이런 결정적인 발전은 라 회장의 혁신에 의해 촉발되었으며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루어진 텐트의 변화 중에 Jake Lah의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없다 .”   1990년대 말부터 Sierra Designs등에서 텐트를 디자인해온 마이클 글래빈은 말했다.

사실, 라 회장을 단순히 알루미늄 합금과 제조의 전문가라고 하는 것은 그가 해온 역할의 극히 일부에 대한 표현일 뿐이다.  그는 동시에 뛰어난 디자이너이다. 1985년부터 일해온Kelty의 텐트 디자이너 마이크 쉐러는 “라 회장은 어떤 고객사 보다 많은 지적재산권(IP)을 소유하고 있다.” 고 알려주었다.

잿더미에서 일어나다

1990년 어느 날, 라 회장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의 부친께서는 그보다 2년 전 DAC가 출범할 때 창업 자금을 투자해 주셨으나 안타깝게도 사업이 흑자 전환을 이루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의 모친 김옥라 박사께서는 라 회장에게 배가 침몰해서 당신의 아들까지 집어삼키기 전에 배에서 탈출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그의 모친은 한국의 걸스카우트 운동을 시작하였고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때부터 그 생애의 대부분을 자원봉사 운동을 널리 퍼지게 하는데 바치셨다.  라 회장은 모친의 지혜를 늘 존중하고 경청하였다. 밤을 새운 고뇌 끝에 이튿날 아침 공장에 출근한 라 회장은 그와 함께 하는 팀원들이 그에게 가족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었다.  “도저히 나 혼자만 도망칠 수는 없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에게는 삶 자체였어요.  그래서 다짐했지요.  오케이, 다 함께 같이 죽읍시다.”  그는 그가 받은 전 유산을 무너지고 있는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하였다.

라 회장인 직접 그린 초기 스케치 일부 (사진제공: 라 회장)

벽을 무너뜨리다

라 회장이 여러 브랜드의 텐트 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향한 텐트의 새로운 파라다임을 제시하는 파격적인 방법들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각 회사의 지적재산권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마이단스는 “Jake Lah는 한편으로 각 브랜드의 아이디어와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텐트 브랜드의 텐트 개발을 돕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커다란 장벽에 막혀 있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여요.”  라고 라 회장은 말한다.  “하지만 보고, 또 보고, 또 다시 들여다 보다 보면 벽에 조그만 틈새나 작은 구멍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아! 혹시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끈기는 친환경 적인 그린 아노다이징과 (green anodizing)같은, 지속 가능한 제조 공법을 개발하는 데에도 원동력이 되었다.  그린 애노다이징은 DAC가2004년에 공개한 획기적인 혁신 공정이다. 그는 8년여의 긴 시행착오 끝에 폴에 덮인 고온 산화막을 약품이 아닌 방법으로 제거하는 장비의 개발에 성공했다.  이제는 DAC에서 생산하는 거의 모든 알루미늄 튜브에 그린 아노다이징 공정을 사용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비전

최근 들어, 라 회장은 커튼 뒤에서 나와 본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21년 봄에 출시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는 Sea To Summit의 초경량 백패킹 텐트에는 라 회장의 역할을 Sea To Summit의 창업자 롤랜드 타이슨과 함께 공동 디자이너로 표기하고 있다. 그는 또한 자기 자신만의 미래지향적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에 만들어진 걸작 중 하나는 손가락 굵기의 우아한 알루미늄 아치로 만들어진 거대한 웨딩 스타일의 텐트이다.  글래빈은, “Jake Lah의 대형 텐트들은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들이 아니다.  그는 디자인으로 표현되는 예술품을 창조하고 있다.”  만일 아웃도어 산업에 관련된 박물관이 있다면 라 회장의 전위적 텐트는 그의 수많은 히트작들과 함께 전시될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이다.  마이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Jake Lah 는 알루미늄 튜브를 이용한 디자인의 기술을 완성시켰다.” DAC 에는 업계 유일의 풍동 실험실이 있다.  DAC 주차장에서 바라본 풍동 실험실은 마치 우주비행선이 공장 건물의 측면을 뚫고 불시착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라 회장은  향후 많은 시간을 자원봉사에 할애할 계획이다.  특히 재난 지원, 비영리 캠페인과 행사 등이 관심 사항이다.  그는 2021년 8월에 10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모친으로부터 자원봉사에 대한 열정을 물려 받았다. 모친의 장수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면 라 회장에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DAC 정원은 자연의 계절이 결코 멈춰서지 않는다는 것을 라 회장에게 상기시킨다.  공장 정원의 나무에 달린 사과가 녹색에서 빨갛게 변하는 것을 볼 때면 그 변화는 언제나 그를 놀라게 한다.  “아니 벌써?”  그가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을 다 이루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글은 미국 양대 아웃도어 잡지 중 하나인 Outside 2022년 겨울호에 게재된 특집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번역>

고건우 / 전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4년, 한국자원봉사협의회 번역봉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