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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어떤 노인이 심하게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진찰을 하더니 노인에게 심한 위염에 걸렸으니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은 다른 의사의 진찰도 받아 보고 싶다고 하면서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두 번째 의사는 위암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자 노인이 의사에게 말했다. 

“먼젓번 의사한테 가는 편이 훨씬 좋겠어요! 위암보다는 아무래도 위염을 앓는 쪽이 백번 낫지 않겠어요?”

 

우스갯소리지만 인간 심리의 한 면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사실을 사실대로가 아니라 내 맘 편한 대로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런 경향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문제를 파악하여 대응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 이른바 희망 섞인 생각(wishful thinking)을 한다는 말이다. 흔히 고집 또는 아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런 편협함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문제와 사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 기제를 통해 언뜻 의아하게 여겨지는 많은 일들을 설명할 수 있다. 교육 수준도 높고 꽤 이성적으로 사고하리라고 기대되는 사람이 엉뚱한 믿음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거나 이른바 ‘비법’과 ‘영약’을 좇는 일 등이 다 이런 심리를 배경으로 하여 생겨난다. 오죽 했으면 미국의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Carl E. Sagan)이 이런 세태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라고 꼬집었을까.

 

세상은 인간이 소망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나 착한 사람에게는 천재지변이나 불운도 비껴갔으면 하는 마음을 누구나 갖는다. 사악하거나 못된 짓 한 사람, 얼굴만 인간이고 소행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은 가만 놔둬도 천벌을 받을 거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현상은 인간 행위의 선악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벌어진다. 몹쓸 병, 말 그대로 불치병에 걸리면 진짜 성자나 착하디착한 어린이도 죽고 만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악마 같은 인간도 이런 병에 걸리지 않으면 그 병으로 인해 죽지는 않는다. 다소 다른 맥락에서지만, 약 2천5백년 전에 노자(老子)는 이를 “천지는 어질지 않으니 만물을 짚(장난감) 강아지처럼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而爲芻狗).”라고 갈파했다.

 

자연과학이 오늘날처럼 눈부시게 발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탐구 대상인 자연을 가능한 한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욕심이나 소원을 최대한 배제하고 대자연과 자연현상이 벌어지는 원인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관찰, 규명하려고 한 것이다. 

 

만일 인간이 자연의 주인공이고 대자연의 모든 것은 오직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 중심적인 믿음만 갖고 세상이나 사물을 관찰했다면, 오늘날의 빛나는 과학적 성과나 기술적 발전은 도저히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이란 무엇인가? 사물이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참과 거짓,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올바로 분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이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과 구분되게 하는 것임은 이미 진부한 상식에 속한다. 흔히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얘기하지 않는가.

 

그런데 인간이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곧 인간은 문제에 이성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우리 인간은 이성과 흔히 대비되는 감정을 성급하게 동원하기 일쑤다. 

 

결국 이성적 사고나 객관적 접근은 인간의 욕구나 소망, 넓은 의미의 감정을 가능한 한 제쳐놓고 대상이나 문제를 그 자체로서 냉철히 바라보려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일각에는 긍정적 사고라는 이름으로 인간적인 소망, 희망 섞인 관찰을 마치 바람직한 것인 양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별 근거 없고 무책임하기까지 한 낙관적 전망, 엉성한 미봉책들, 거시적 장기적 관점에서의 숙고를 거치지 않은 정책, 다양한 관련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해법 등이 모두 긍정적 사고, 또는 창의적 발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넘쳐난다.

 

세상과 현상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 맘 편한 바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안이할 뿐 아니라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그것이 한 개인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범위에 이르는 막중한 사항일 때 그 파급력과 위험성이 지대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문제를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관찰, 파악하며 합리적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 즉 이성적 접근 방식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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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5-09 10: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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