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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대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 하면 흔히 뒤따라 나오는 인용구가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다. 꽤 권위 있는 인용사전에도 그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실려 있다. 그가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예스’ ‘노’로 명쾌히 답하기는 쉽지 않다. 설명을 약간 곁들여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는다. 죄목은 그가 국가가 인정하는 신이 아닌, 그만의 엉뚱한 신을 믿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당시의 흔한 관행에 따르면 뇌물 비슷한 돈 몇 푼을 감옥 관리자에게 주면 버젓이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도 스승이 말도 안 되는 죄명으로 죽음의 위기에 몰린 일을 딱하게 여겨 이런 방식으로 그를 구출하려고 한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그런 방식으로 법의 제재를 피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오히려 제자들을 설득한다. 


자기는 아테네의 한 시민으로서 평생을 국법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는데, 이제 법이 부당하게 집행되거나 자신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고 하여 그 법을 악법이라고 규정하면서 지키지 않음은 정당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법 자체가 악법이냐 선법이냐를 판별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현존하는 법에 관해 평소 그것을 당연시하다가 정작 그 법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면 도망치려는 것은 결단코 의롭지 않은 행동이라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플라톤이 쓴 ‘크리톤’을 읽어보면 좀 더 확연히 파악할 수 있다.

 

에 관해 독일의 게오르크 예리네크(1851∼1911)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도덕과 법을 가르는 간결 명쾌한 명언으로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요컨대 법은 모든 국민이 마땅히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라는 주장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한 국가의 국민은 누구든지 법을 지켜야 한다. 고상한 목표를 추구하며 사는 성직자로부터 세속적인 욕구를 추구하며 사는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애초에 법은 고결한 인격을 갖추거나 이상적인 삶을 지향하는 성자와 같은 사람들이나 간신히 지킬 수 있는 목표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만일 법률을 그런 기준에 맞추어 제정한다면 국민 대다수가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되고 말 것이다. 예리네크의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국민 모두가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한 국가나 사회가 아주 이상적인 모습이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고상하고 드높은 삶은 단지 법을 위반하지 않는 정도로써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니까. 한 개인이 법에 걸릴 정도로 나쁜 짓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훌륭한 삶을 살게 되는 게 아닌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연장해보면, 한 사회, 국가의 많은 구성원이 법, 즉 최소 수준의 도덕조차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런 사회, 국가는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됨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법이란 국민 모두가 안전한 가운데 국가가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며 제대로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기본 장치이다. 그래서 누구나 법을 존중하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법의 준수와 관련한 우리의 의식이나 행태는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부끄럽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법률 제정이라는 막중하고 숭고하기까지 한 일을 본업으로 수행해야 할 입법자(lawmaker)인 국회의원들이 위법, 탈법을 저지르거나 깊숙이 연루된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술 더 뜨는 건, 국회의원 자신들이 누릴 특권이나 특혜를 줄이거나 포기하는 일 만큼은 갖은 전략과 수법을 동원하여 교묘하게 피한다는 사실이다. 보다 높은 기준에서 주문한다면 정치 지도자들, 특히 입법자나 법 집행자들은 법을 준수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준법 이상의 고상하고 품격 있는 차원을 지향하는 자세, 꾸준히 공동선(common good)을 추구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한 마디로, 지위에 걸맞는, 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반 국민 사이에 법의 가치에 관한 올바른 인식이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고 긍정적인 법의식도 튼튼히 자라날 것이다.

 

우리 모두 법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사소한 경우에도 법을 지키는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툭하면 들먹이는 ‘선진국’도 얼마나 법률이 심도 있는 검토와 합당한 절차에 따라 제정되는가, 그리고 얼마나 국민 대다수가 법률을 자발적으로 준수하는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이 준법정신을 능동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특별히 정치 지도자들과 법 전문가들에게 준법의 모범을 보이라고 거듭 간곡히 당부하고 싶은 마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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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9-20 16: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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