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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살며 나누며(16) - 부모-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 기사등록 2024-04-18 12: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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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전시대에 떠돌던 풍자적이고 제법 흥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 대통령과 소련 대통령이 각각 자기가 통치하는 나라 국민이 국가 이념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고 주장했다. 말다툼 끝에 비밀리에 내기를 걸었다. 

두 나라 대통령이 최고 심복을 한 명씩 골라서 얼마나 이념성이 투철한지 시험해 보기로 한 것이다. 시험 내용은 각 대통령이 선발한 최고 심복을 천 길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서 당장 뛰어내리라고 명령하고 누구의 부하가 명령을 더 잘 수행하는지 겨루는 것으로 정했다. 

 

먼저 미국 대통령이 가장 충성스러운 보좌관에게 절벽에서 뛰어내리라고 명령했다. 보좌관이 와들와들 떨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각하, 제발 그 명령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제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요.”

 

옆에서 지켜보던 소련 대통령이 씩 웃더니 이번에는 자신이 선발한 부하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부하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후다닥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게 아닌가. 다행히 그는 절벽 중간에 있던 나뭇가지에 옷이 걸리는 바람에 가벼운 상처만 입고 살아났다.

 

구해낸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쩌면 그처럼 용감하게, 정말로 목숨을 걸고 명령을 따를 수 있었나요?”

“아… 예! 실은 저는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 제가 공산주의 사상이 확실치 않다고 의심받으면 가족이 위험해지거든요. 저야 죽더라도 제 가족은 살려야 하지 않겠어요?” 

 

물론 지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한낱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기에는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인간의 행동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동기는 ‘가족’이라는 메시지다.

 

우리 인간의 삶은 대부분 숱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세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변화하는 오늘의 정보사회, 세계화된 사회에서는 삶은 곧 관계 맺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계 당사자 사이의 거리로 말하면 상당히 가까워서 밀착되다 싶은 인간관계도 있고, 아득한 거리에 있는 인간관계도 있다. 

 

리학자들에 의하면, 순전히 신체적으로도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 만날 때도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아주 친밀한 사람들끼리도 지나치게 가까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발동하고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관계는 우선 가족이라는 자연적 관계에서 출발한다. 가족 관계 중에도 부모 자식의 관계는 대체로 선택의 여지 없이 성립한다. 일부러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의식되고 느껴지는 관계이기도 하다. 부모의 자식 사랑, 특히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말 그대로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인간 사회의 그 어떤 사랑도 이런 어머니의 절대적 자식 사랑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냉철히 말하면 이런 어머니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은 사실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다. 거의 모든 생명체가 자기 자식(새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아낌없이 자기를 희생한다. 새끼를 낳는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을 새끼의 먹이로 제공하면서 미련 없이 죽는 생명체가 허다하다.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자식을 알맞게 사랑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자식 사랑은 자연스레 지나치게 뜨거워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 누구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듯이 자기 자식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이게 대단히 어렵다. 

 

철학자 플라톤은 한 국가 사회가 진정으로 이상적인 사회가 되려면 통치자 계급은 절대로 가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지나쳐 보인다.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봐도 역사에 족적을 남긴 걸출한 위인들조차 가족 관계, 좀 더 좁히면 자식 문제에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여 큰 실패나 오점을 남긴 사례가 적지 않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도 공사 분별에 명확하고 의사 결정, 정책 판단에도 합리적이고 단호한 사람조차 자식과 적절한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긴말 필요 없다. 우리나라 고위직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가 자식의 군 복무 면제나 명문 대학 합격을 위한 증명서 조작이나 위조 따위가 아닌가. 

 

식과 알맞게 거리를 두는 일은 쉽지도 않거니와 사소한 문제도 아니다. 판단이나 행동을 본능이나 감성에 맡겨 놓는 게 아니라 냉철한 이성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보다 감성이나 본능에 쉽게 휘둘린다. 자동차로 말하면 가속 페달을 밟는 쪽이 브레이크를 밟기보다 몇 배나 더 수월하다. 과연 부모와 자식과의 바람직한 거리, 적당한 거리가 어느 정도이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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