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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획총괄위원장, 전 동아일보기자





의도 면적보다 훨씬 넓은 센트럴파크는 뉴욕의 공기를 정화하는 허파 역할을 한다. 맨하탄의 중심부에 센트럴파크가 조성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 정도 크기의 각종 병원이 있어야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급성장하는 신흥 도시 뉴욕의 금싸라기 땅에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자고 주창한 사람은 언론인이자 환경운동가 윌리엄 브라이언트였다. 


그는 <뉴욕 포스트>를 통해 공원조성 캠페인을 끈질기게 벌여, 마침내 의회승인을 받아냈다. 타임스퀘어 근처에는 그를 기리는 조그만 공원이 있다. 브라이언트 파크에는 야외 독서실이 있고 시 낭송회도 열린다. 비가 오는 날이면 HSBC은행 후원으로 반스 앤 노블의 스타박스에서 책을 읽고 독서토론도 한다. 


센트럴파크 입구에서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말을 타고 비스듬히 앉아있는 쿠바의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 동상이다. 시인이자 언론인 출신인 마르티는 15년간 미국서 망명생활을 하며 쿠바 독립을 위해 스페인과 싸우다 숨졌다. 이 기마상은 마르티가 총을 맞아 목숨을 잃는 순간의 모습이며, 미국과 쿠바 간 관계개선에 따라 2019년 초 이 동상과 똑 같은 복제품을 아바나에 세웠다.


 센트럴 파크는 워낙 넓은 데다 각종 시설물마다 아기자기한 이야기 거리가 넘쳐나서 하루에 다 둘러볼 수도 없다. 심지어 벤치 하나하나에도 기증한 사람의 이름과 기억하고 싶은 사연이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가로등에 표시된 숫자는 59번가부터 110번가까지 공원 바깥의 위치를 나타내는 스트리트와 같다. 


이 속에는 동물원, 극장, 경기장이 수두룩하고 철새들의 도래지인 자연림도 있다. 뉴욕은 센트럴 파크와 같이 가장 자연적인 것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가장 인공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클린 호수를 한 바퀴 도는 2.5km 산책로는 명품거리다. 나는 호수가를 거닐다가 잠시 풀밭에 누워 나뭇가지 사이로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센트럴파크 주변은 예술의 도시 뉴욕을 대변하는 ‘뮤지엄 마일(Museum Miles)'이라는 테마길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 자연사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뮤지엄, 클로이스터스 뮤지엄 등이 예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매년 6월 두 번째 화요일 저녁에는 차량을 통제하고 음악공연을 비롯한 축제가 벌어지며 유명 미술관 박물관이 무료 개방한다.


트럼프 타워가 있는 센트럴파크 서쪽에는 팝가수의 여왕인 마돈나도 못 들어간 최고급 주택단지가 있다. 미국의 공동주택은 우리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콘도미니엄과 기존 입주민들이 새로운 입주자를 검증하는 코압 제도가 있다. 20세기 초 뉴욕의 외곽인 센트럴파크 주변에 다수의 최고급 주택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 로마의 신전과 같은 높은 탑으로 유명한 산리모에는 타이거 우즈, 스티븐 스필버그 등 명사가 거주했던 아파트인데 톱스타 마돈나가 코압 주주총회에서 입주가 거절된 것이다. 이곳에는 존 레논과 요코타가 거주했던 르네쌍스식 다코타를 비롯하여 랑햄, 캐니월스, 베레스포드, 세인트 얼번 등 콧대 높은 주택단지가 있다. 


뉴욕에는 역사적, 심미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축물의 개발을 제한하는 랜드마크법이 있기에 기존의 가치 있는 건물을 보존하면서 그 위에 공중권을 사서 초고층 빌딩을 세우는, 이른바 연필모양의 펜슬타워가 최근 유행하고 있다. 센트럴 공원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센트럴 파크 타워의 꼭대기 3개 층을 하나의 아파트로 개발한 펜트 하우스는 3천 억 원을 호가하고 있다. 


 공원 위 쪽은 할렘이다. 할렘이라고 하면 범죄소굴의 흑인거리를 연상하지만 원래 백인거주지였다. 초기 네덜란드인들이 남쪽에 뉴암스텔담을, 북쪽에는 뉴할렘을 세웠다. 본국의 암스텔담 이웃에 할렘이라는 위성도시가 있기에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런데 영국이 들어오면서 New가 사라져 버렸다.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밀턴도 할렘에서 2시간 거리인 월스트리트까지 마차로 진흙 길 출퇴근을 했다.


 1920년대 후반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흑인들이 할렘의 공공주택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오자, 백인들이 슬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곳 출신 흑인 하면 말콤X가 떠오른다. 그의 원래 이름은 말콤 리틀이었으며, 결손가정 속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었다. 그가 중학생 때 장래 희망을 ‘변호사’라고 적어냈는데 선생님이 ‘흑인은 목수나 청소부 일이 제격’이라고 타이르자 학교를 그만두고, 마약이나 강도, 절도 등으로 감옥을 드나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KKK단에 살해되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가자 가슴 깊이 백인을 증오하며 백인테러에 앞장서면서 자신의 이름을 바꿨다. 그는 헤비급 권투선수 캐시어스 클레이를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해 주기도 했다. 같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주의자였기에 말콤X와는 평생 한 번 밖에 만난 적이 없지만 둘 다 39세에 피살되는 불운을 겪었다.


 요즘은 할렘이 많이 변하고 있다. 무법지대의 흑인지역이라는 오명을 벗은 지 오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퇴임 후 할렘에 사무실을 열었는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시절 이곳을 다녀가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싼 임대료를 찾아 이곳에 들어옴으로써 문화예술 지구로 탈바꿈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스타박스 커피점이 곳곳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맥도날도는 고속도로변이나 서민지구, 우범지역에도 파고들지만 스타박스는 어느 정도 문화나 생활수준이 갖춰진 곳에만 찾아 들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해안 식당가 피셔맨 워프는 상가의 품격을 떨어트린다며 맥도날도의 입점을 반대한 바 있다. 


 센트럴 파크 북녘인 110번가의 암스텔담 애비뉴에는 세계 최대의 성공회 성당인 세인트 존 디바인 교회가 있다. 나의 교적이 성공회이어서 그런지 남다른 관심이 있는 곳이다. 고딕양식에 7개의 예배당이 있는 이 성당은 1892년 착공, 2050년 완공 예정이므로 스페인의 사그리다 파밀리아 보다 14년이 긴 158년 간 최장 공사기록을 갖고 있다. 완공되면 세계 최대의 성당이 된다고 한다.


 이 성당에는 성인들의 조각상 외에 조지 워싱턴, 링컨, 콜럼버스, 세익스피어 등 위인들도 있다. 특이한 것은 9.11테러 4년 전인 1997년에 예언이라도 하듯 쌍둥이 빌딩과 클라이슬러 빌딩 등 뉴욕의 명품 건물들이 무너지는 장면을 만들어 두었다.


 장기간 건축하다 보니 공사비를 헌납하는 사람의 사연도 많고 시대적 상황이 증축 건물에 투영되기도 한다. 초기 네델란드인들 중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은 비버나 수달 가죽을 유럽에 팔고 중국의 도자기와 차를 들여온 존 제이콥 애스터였는데 그의 고손자인 애스터4세는 신혼여행길에 타이타닉을 탔다가 수장되었다. 당시 임신중이었던 부인은 부녀자 우선 구조원칙에 따라 목숨을 건졌다.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그녀는 성공회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공사비를 전액 부담하면서 한쪽 모퉁이에 타이타닉호를 새겨 넣도록 했다. 대통령과 왕족이 애용하던 뉴욕의 최고급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도 애스터 가문 소유였으나 1919년 중국 보험사에 20억 달러에 넘겼다.


 센트럴파크 남녘 입구에는 전 세계 여성들의 로망인 티파니 보석상이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해인 1837년 유대인 청년 티파니가 친구 존 영과 함께 브로드웨이에 문구류 잡화점 ‘티파니 앤 영’을 열었다. 티파니는 1848년 프랑스 혁명으로 몰락한 귀족들의 보석을 모두 매입, 보석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858년 미국과 유럽을 잇는 대서양 횡단 케이블이 개통되자 남은 전선을 헐값에 매입, 팔찌와 열쇠고리 등 기념품으로 제작했으며 남북전쟁 때는 깃발, 수술도구, 무기류 등을 납품하기도 했다. 티파니는 은에 구리를 합금하여 광택이 많고 강도가 높은 스털링 실버를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하여 은세공 최고 메달을 받았다. 


 티파니는 1878년 남아공 킴벌리서 채광된 128캐럿의 옐로 다이어몬드를 기존의 58면 커팅에서 82면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보석의 장을 열었다. 특히 다이어먼드에 최대한 빛이 많이 들어가 찬란한 반짝임을 과시한 ‘티파니 세팅’은 약혼반지의 표준이 되었다. 유대인의 Jew와 보석이라는 Jewel의 어원이 같은 걸 보면 티파니가 보석의 명문가로 등장할만도 하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제목 탓으로 아침식사를 요구하는 방문객들이 많아 최근 매장 4층에 29달러 짜리 아침 세트메뉴를 파는 블루박스 카페를 열었다. 제1차대전을 겪으면서 티파니가 몇 년 간 연속된 영업부진의 구원투수로 1920년에 등장한 보글리올로 회장은 젊은층 대상의 대중 이미지의 악세사리 용품을 개발, 4층에 별도의 매장을 마련했다. 


1층 티파니 매장은 여전히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영화에서처럼 티파니 다이어먼드를 소유하여 상류층이 되고픈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아니라, 그저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서둘러 나가는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오드리 헵번이 우울할 때마다 단돈 10불을 손에 쥐고 티파니에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던 세계 최고 보석 옐로 다이어몬드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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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0-30 17: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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