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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영재(永才)는 지금으로부터 약 1천 2, 3백년 전 승려이다. 성격이 익살스럽고 호쾌하였으며 노래(향가) 또한 잘했다. 그가 만년에 남악에 조용히 숨어 살려고 대현령을 넘으려고 할 때 60여 명의 도적떼를 만났다. 


도적들이 일제히 칼과 창을 들이대며 겁을 줘도 두려워하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 이름을 물었고 영재라고 대답했다. 영재가 그 당시에 얼마나 유명했던지 도적들조차 그의 이름을 듣자 금방 알아보고는 그에게 당장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영재가 낭랑하게 노래를 지어 불렀다. 도적들은 그의 노래에 깊이 감동한 나머지 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치고 비단 두 필을 그에게 선물하려고 했다. 영재는 “내가 재물이 죄악의 근본임을 깨달아 이제 깊은 산에 숨어서 일생을 보내려는데 어떻게 이걸 받겠는가?”라고 말하면서 비단을 땅에다 내동댕이쳐 버렸다. 

 

도적들은 더욱 감동하여 칼과 창을 버리고 즉석에서 머리를 깎고 영재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영재를 따라 지리산에 입산한 뒤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삼국유사≫에 ‘영재우적(永才遇賊)’이라는 제목으로 노래와 함께 전해지는 설화다. 상징과 은유가 복잡, 섬세하게 엉켜 난해한 오늘날의 문학작품과 달리, 이 이야기에는 주제나 메시지가 지나칠 정도로 간결,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참된 가치와 올바른 인생길을 모른 채 재물에 눈이 팔려 어리석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 향가와 설화가 정말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주인공에 대한 미화와 과장도 상당히 들어 있어 보인다. 전체의 구도나 주제 전달 방식 또한 동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지나치게 단순 소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면을 잠시 제쳐놓고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 있고 멋스러움도 발견하게 된다. 으슥한 산속에서 수많은 산적들이 시퍼런 칼과 창을 겨누는 데도 태연하고 당당한 영재는 정말 멋진 사나이가 아닌가. 게다가 오늘날로 말하면 가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정확히 말하면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를 만하다) 노래까지 기막히게 잘 부른다. 향가를 얼마나 잘했던지 다 부르고 나자 도적떼가 모두 감복하지 않았는가.

 

영재만큼은 아니더라도 도둑들 역시 호쾌하고 멋들어진 사나이들임이 분명하다. 겨우 노래 한 곡을 듣고 도둑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인생행로를 180도 바꿀 정도로 풍부한 감성과 단호한 실존적 결단력을 지녔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기막히게 딱한 사연이 있어서 도둑이 된 것이지 본래는 시인의 감성을 지닌 선량한 자들이었다고 봐도 될 듯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르지만, 통쾌함을 느끼면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하는 얘기다. 문(文)과 무(武), 정신과 물질, 성(聖)과 속(俗)이 잠깐 쨍하고 맞부딪치나 했더니, 다음 순간 문(文), 정신, 성(聖) 쪽이 보기 좋게 완승을 거두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엽기적인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범죄나 극악무도한 사건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떤 인간 집단에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인)가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고 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원래 나쁜 사람’과 동의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 어느 구석에는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미담의 주인공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람들의 행위는 지선과 극악을 양 극단으로 하여 대단히 폭넓은 선과 악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지킬과 하이드’ 중 과연 어느 쪽을 인간 본래의 실상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어쩌면 실제 인간은 ‘하이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지킬’의 측면 역시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본성은 착하다’는 생각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다는 강한 소망이나 당위성을 담은 명제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메마르고 험한 세상살이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마저 없다면 우울한 마음과 암담한 전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간에, 인간에게 잠재된 선한 본성이 올바로 발휘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을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각 삶의 보람을 누리는 건전한 사회는 결국 인간의 본래적 선량함에 관한 믿음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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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3-28 15: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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