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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 한국자원봉사신문 기획총괄위원장

- 전 동아일보 기자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포르


                                   폭력-겨울-산이 없는 3無의 나라 





가포르는 우리나라 서울 보다 약간 넓은 면적의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하지만, 용의 여의주처럼 아시아의 보배 역할을 하면서 세계의 강소국(强小國)으로 자리잡고 있다. 


180여년 전만 해도 말레이반도 남단의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던 싱가푸라(Singapura, 사자의 도시)가 남양무역의 요지로 발전하게 된 것은 서구열강의 동남아확장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싱가포르의 상징 머라이언(인어 mermaid와 사자 lion 합성어)은 폭풍으로 마을이 휩쓸어갈 때 사자머리에 물고기 모양으로 나타나 이를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다.

 

 19세기 초 말레이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은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라이벌 네덜란드의 확장을 막기 위해 동인도회사의 토마스 스템포드 래플스 부총독에게 새로운 무역기지 건설을 지시했다.


 스탬포드 래플스는 아버지가 노예장사로 망하자 14살 때 동인도회사 급사로 들어가 말레이말과 풍습을 익히고 남보다 먼저 현지에 적응하면서 승승장구 했다. 그는 말라카 해협에 무역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싱가포르를 동인도회사에 편입시키는데 앞장섰다.


             싱가포르를 동인도회사에 편입시킨 건국의 아버지 래플스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조호르 국왕으로부터 영유권을 영구히 넘겨받은 래플스경은 우선 매립을 시작하여 확장조성된 지역을 ‘래플스 구역(Raffles Place)'으로 명명함으로써 그는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케인즈의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자유무역항을 만들고 중국인, 인도, 말레이인들을 적극 유입하여 싱가포르 인구를 대폭 늘렸다.

 

 국은 19세기말까지만 해도 식민지 인도와 말레이시아로 가려면 풍력과 조류에 의존하는, 이른바 ‘죽음의 배’라고 하는 Coffin Ship(棺船)을 타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야 하기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은 증기선의 개발로 1941년부터 지브랄타 해협을 통해 이집트를 거처 동양을 왕래하는 정기선을 운행함으로써 변방의 끝이었던 싱가포르가 국제무역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실제로 오늘날 싱가포르에서 스템포드나 래플스는 가장 높은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73층의 호텔이 스템포드호텔이며, 120년 전통의 래플스호텔은 세계의 명사들이 즐겨찾는 싱가폴의 상징이다. 항해 중 배에서 태어난 래플스경은 유창한 말레이어를 구사하여 수마트라 총독을 지냈으며, 동식물 연구조사에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여 영국왕실동물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그가 자카르타 지역을 탐험하면서 발견한 직경 1.2m나 되는 세계 최대의 꽃도 ‘래플스 플라워’로 명명되었다.

 

            래플스 호텔은 유럽왕실의 안식처로 각광


 1887년 페낭의 갑부 사르키스가 세운 래플스호텔은 숲과 바다가 어우려진 경관의 아름다움에다 고급스런 장식, 다양한 진미의 식당이 명성을 떨쳐, 유럽왕실의 안식처로 각광을 받았다. 특히 롱바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노을빛 칵테일(드라이 진, 체리 브랜디, 레몬, 설탕시럽 등)을 ‘싱가포르 슬링(마신다는 뜻의 독일어 슈링겐에서 유래)’이라고 하며 이미 세계 명품이 되었다. 작가인 서머셋 몸은 이 칵테일을 ‘동양의 신비’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플스 호텔을 즐겨 찾은 예술인은 찰리 차프린과 모리스 슈발리에 등 배우를 비롯하여, <정글북>을 쓴 키플링, 해양소설의 대부 조셉 콘래드, <달과 6펜스>의 서머셋 몸 등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작품구상을 하거나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조셉 콘래드는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작품활동을 했기에 지금도 그를 기리는 콘래드 빌딩이 높게 솟아 있다. 인간의 악마성을 고발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월남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원전은 아프리카 콩고를 찾아간 뱃사나이들의 잔혹한 경험을 신비롭게 그린 조셉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이다.

 

 싱가포르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래플스라면 여기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사람은 리콴유(李光耀) 전수상이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을 나온 변호사 출신의 리콴유는 영국 식민지시대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일제점령시대인 2차대전 때에는 일본군 보도부에 근무했으며, 종전 후 말레이시아연방의 싱가포르 주정부총리를 역임함으로써 세 나라의 애국가를 번갈아 부르며 자라온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였다.


       래플스가 싱가포르의 기초를 닦았다면 리콴유는 그위에 금자탑을 세워 


 침내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수상이 된 리콴유는 26년간 연속 집권하면서 철저한 통제정책을 통해 사회제도를 개혁하고 경제성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마치 놀이나 도박, 술을 금지하던 극단적 청교도생활의 크롬웰시대나 타락한 교황청을 밀어내고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주도한 15세기말의 피렌체를 연상할 정도의 엄격하고 투명한 사회를 지양해왔기에 싱가포르는 ‘푸르고 깨끗한(Green Clean)'이라는 슬로건을 깃발처람 앞세우고 있다. 


특히 나라 전체가 테마공원처럼 꾸며져 있는데다, 보타닉 식물원의 평범한 난(蘭)에다 배용준이나 다이애나 같은 이름을 붙일 정도의 상술이 있으니 그 작은 도시국가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몰려간다.

 

 싱가포르를 지칭하는 이름 중에 대표적인 것이 ‘좋은 나라(Fine Country)'라는 것이다. 영어의 Fine은 ‘좋다’라는 뜻 외에 ‘벌금’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처럼 모든 경범죄에 무거운 벌금으로 철저히 규제하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거리에 휴지를 버리거나 침을 뱉거나 손으로 코를 풀거나 담배를 피우면 40만원 벌금이다. 


                           싱가포르는 엄청난 벌금의 나라


연장소도 보물찾기처럼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면 20만원이 넘는 벌금형이기 때문에 싱가포르는 흡연율 14%로 세계에서 가장 담배를 적게 피우는 나라이다. 껌도 판매금지를 해오다가 세계무역기구의 압력으로 개방하기는 했지만, 치아에 해가 없는 무가당만 허가한데다 약국에서만 팔면서 구매자의 인적사항을 남기도록 규제하고 있으므로 껌을 씹고 다니는 싱가포리안을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국민소득이 우리의 2배가 넘는 선진국인데도 후진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태형(笞刑)으로 범죄자를 다스리는 곳이 싱가포르이다. 태형은 15세에서 50세 의 남자에게만 적용되지만 1대 맞으면 기절할 정도이므로 의사 입회 아래 집행된다. 불법 입국은 3대, 무기 탄약 소지는 6대, 밀수와 강간은 12대이다. 


1994년 차량에 낙서한 미국청년 마이클 페이에게 공공기물 훼손죄로 6대의 태형이 선고되었는데, 클린턴대통령의 간곡한 선처요구를 감안하여 4대의 매질을 한 후 추방한 일이 있었다. 2002년에는 전세계의 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마약 400g을 운반한 25세의 호주 청년을 ‘원칙대로’ 사형집행했다. 국민들이 공포와 엄한 형벌을 통해 범죄 없는 청정사회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적도 바로 위에 위치한 상하(常夏)의 기온이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추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바깥은 덥지만 실내는 어디든지 냉방시설이 아주 잘 되어 항상 춥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개 더운 지방 사람들은 나태한 품성 때문인지 개발도상국이 많은데, 싱가포르만은 예외여서 아테네 이후 가장 훌륭한 도시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별 부패인식 지수에서 싱가포르는 85점, 한국은 62점으로 32위 


 민소득 세계 5위인 싱가포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높은 청렴도이다. 최근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한국은 62점으로 32위인데 비해 싱가포르는 85점으로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학교성정 1% 이내 우등생은 모두 공무원으로 채용한다. 

고교 시절부터 우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고 대학은 해외 명문대로 보내서 세계 엘리트들과 교우관계를 맺도록 지원한다. 공무원 경쟁력 세계 1위 답게 임금도 최고급으로 대우해줌으로써 부정부패의 유혹을 원천적으로 막아준다. 

 

 특히 싱가포르는 ‘글로벌 스쿨 하우스’라는 국가목표 아래 MIT나 와튼스쿨, 존스홉킨스 등 세계 10대 명문대와 제휴하거나 자체 캠퍼스를 유치하여 우수한 인력 배출은 물론, 싱가포르를 아시아 대학 허브로 만들어가고 있다. 


            '글로벌 스쿨 하우스' 국가목표 아래 세계 10대 명문대와 제휴


서울대가 세계 118위일 때 싱가포르대학은 18위였으며 사회과학분야에서 아시아1위가 된 것도 대학을 일찌감치 개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싱가포르대학의 명성에 힘입어, 한때 외국인학생 2천명 모집에 2만5천명 이상이 몰려 13:1의 경쟁률을 보였다. 

 

 또한 싱가포르는 한해 20만명 이상의 외국환자들이 몰려들어 아시아의 의료 허브로도 각광받고 있다. 6성급 호텔서비스를 하고 있는 그린 이글스 병원은 환자 보호자들의 관광안내를 위해 자격 가이드까지 고용하고 있다. 이미 주식시장에 상장된 이 병원은 고객의 절반이 외국인이다. 

 

 싱가포르는 중국인이 74%, 말레이인 13%, 인도 9%, 방글라데시 등 기타 민족이 4%인 다민족 국가에 무지개처럼 다양한 종교이지만, 오순도순 화합하면서 성공신화를 이룩한 배경은 독특한 ‘사회통합’ 정책 덕분이다. 싱가포르는 중국어, 영어, 인도 타밀어, 말레이어 등 4개의 공용어를 쓰지만 제1공용어는 영어이고 헌법상 국어는 말레이어이다. 


든 화폐에는 초대 대통령이었던 말레이인 이스학이 차지하고 있다. 인도사람들이 냄새나는 카레를 즐기자, 오히려 매년 8월 셋째 주 토요일을 ‘카레 먹는 날’로 정해서 화합을 주도하고 있다. 토지의 사유화가 금지된 싱가포르는 국민 대부분이 공공임대주택에 살기 때문에 집걱정이 없는 나라다. 젊은이가 애인에게 “주택개발청에 아파트 신청하러 가자”는 말은 결혼 프로포즈로 통한다.


              등소평도 싱가포르 가서 보고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중국계인 리콴유는 “중국인들의 나쁜 습관을 뿌리 뽑겠다”면서 중국 중심의 정책을 멀리하고, 질서를 넘어서는 자유를 용납하지 않았다. 세계 지도자들을 무수히 만난 헨리 키신저는 “리콴유처럼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다”고 했다. 세계의 화교상인들을 연결하여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세계화상대회의 창안자도 바로 리콴유 수상이다. 등소평도 싱가포르를 방문한 후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했다. 


콴유는 수상퇴임 후 원로장관을 거쳐 스승장관(Minister of Mentor)으로 추앙받은바 있다. 중국의 상인정신이 깔려 있는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송수관을 통해 물을 공급받으면서 이 물을 가공하여 몇 배나 비싸게 되팔고 있다. 지난번 코로나 팩데믹 때 상하이 철통봉쇄에 놀란 중국인 거부들이 보다 자유로운 싱가포르로 이주하는 붐이 최근 일어나고 있다.

 

 싱가포르 남단의 인공섬 센토사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워트파크, 스카이라인 루지, 골프장, 비치, 쇼핑몰이 몰려 있는 동남아 대표적인 관광 휴양지이다. 특히 2013년부터 미국LPGA투어 HSBC위민스 골프대회가 열리고 있는 센토사 골프클럽은 2021년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골프장 운영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최대한 줄이는 것은 물론, 남은 배출량은 국제 기후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배출권을 구매하고 있다. 또한 회원들에게 라운딩 당 1달러씩을 거둬서 페루와 인도네시아의 숲과 늪지대 보호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포르, 폭력과 겨울과 산이 없는 3無의 나라 싱가포르. 세계 최고급이라는 창이공항을 비롯하여 시내의 주요한 건물 대부분을 우리 한국기업들이 건설한 것에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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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7-19 18: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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