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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시대, 중국엔 왜 아직도 문맹률이 높을까? - 읽기는 하나 쓸 줄을 모르는 실사증까지
  • 기사등록 2023-05-11 17: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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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섭 

육사 31기

- 전 주중한국대사관 참사관

- 중국농업대학 관리학박사

- 한국농업연수원원장

- 저서, '인문고사성어'(2013,이담북스, 415쪽)






국 사람들이 축구경기 등에서 ‘이기다’라는 의미로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잉'으로 발음하고 쓸 때는 ‘贏’이라고 쓴다. 최근 중국의 문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회사원들에게 ‘민망하다’는 의미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尷尬(감개 gān gà)’를 써보라고 했더니 한 명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래 전에 서울에 유학하여 박사가 된 중국 지인이 이러한 보도를 필자에게 말하며, 왜 중국은 한국처럼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한글을 만들지도 못하면서 이 스마트한 시대에 이토록 어려운 한자(漢子)만을 계속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였다.  


물론 중국이 1950년대에 언(言), 금(金) 등 많은 부수의 획 수를 줄여 ’간체자(簡體字)‘를 많이 만들어 쓰기 쉽게 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말로는 많이 쓰이나 정작 이것을 글로 써보려 하면 어렵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특별히 기억하고 연습(贏; 망구월패범 亡口月貝凡)하지 않으면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중국인 94%가 글자 쓰는 법을 잊어버리는 실사증 경험" 조사 보고


중국인 94.1%가 글자를 잊어버리는 실사증(失寫症)을 경험했다는 조사보고도 있다. 이런 현상은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완전히 보편화된 스마트 폰 시대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중국에서는 이를 ’신문맹(新文盲)‘ 또는 ’한맹(漢盲)‘이라고 말한다.


돌이켜 보면, 중국의 문자는 진시황(秦始皇) 때(BC221-BC206)에 통일되었다. 고대 상(商)나라 때에 갑골문-금문에서 시작된 상형문자는 춘추전국시대(BC770-BC221)에 나라마다 쓰는 글자가 달랐지만 진시황은 그간 진나라가 써오던 소전(小篆)으로 문자를 통일시킨 것이다. 


그 후 한나라 시대(BC206-AD220)부터 소전을 기반으로 예서(隸書)-해서(楷書)로 발전시켜 오늘날 우리가 쓰는 글자인 ‘한자’로 통일된 것이다. 그러면 발음은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달랐다. 같은 글자라도 그 발음이 춘추전국 시대의 각 나라마다 상이했다. 발음이 다르고 방언이 많다 보니 글로 필담을 해야만 비로소 소통이 이뤄졌던 것이다.


  한자의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수많은 어문학자들이 연구해 왔지만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서구열강이 중국에 눈독을 들이고 보낸 선교사들이 중국어를 배우면서 처음 부딪힌 것이 바로 발음문제였다. 그들은 중국어를 들리는 그대로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찾았다. 


유럽의 선교사들이 출신국별로 다르게 쓰긴 했지만 당시 대체로 ‘웨이드식’ 표기방법이 많이 통용되었다. 이는 순전히 외국인들만의 방식이었다. 그 후 1910년대 중화민국은 중국인들을 위해 한자 부수 중 간단한 것들로 주음부호(注音符號)를 만들어 발음을 표기하였다. 


그 후 1950년대 중반, 중화인민공화국은 로마자의 모음과 자음을 섞어 발음을 표기한 한어병음자모(漢語拼音字母)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발음표기방식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시황이 문자를 통일하고 마오쩌둥이 발음을 통일시켰다’고 말한다.


               "진시황이 문자를 통일하고 마오쩌둥은 발음을 통일시켰다"


  그러면 글자는 어떻게 변했을까? 중국은 한어병음자모와 더불어 간체자도 만들었는데, 이는 지금도 대만에서 고집하는 번체자(繁體字:정체자)와 한국과 일본이 쓰는 약자(略字)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었다. 


이어서 북경어를 중심으로 한 ‘보통화(普通話)’를 표준어로 삼아 이 병음과 간체자를 전국 구석구석까지 대대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지금의 60대 이후의 중국인들이 어느 정도 문맹에서 벗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변환이 없어 중국의 문맹을 다 없애기에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중국어의 음절은 411개에 불과하다. 한어병음자모의 성모(자음)로는 b p m f d t n l g k h j q(ㅊ) x(ㅅ) zh ch sh r z c(ㅊ) s 등 21개이고, 운모(모음)로는 a o e(어) i u ü(위) 등 단모음과 ai ei(에이) ao ou(어우) an en(언) ang eng(엉) ong 등 9개 복모음, i u ü 와 결합되는 복모음 20개가 있다. 


성모와 운모의 결합과 운모의 단독 발음 총수 411개에 4성을 더해 실제 발음되어 통용되고 있는 것은 약 1,200여개 정도다. 그래서 한 개의 발음에 수십 개의 글자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앞뒤 문장과 구조를 보아야 뜻을 이해하고 유추할 수 있다. 


이것으로 거의 6만 개에 이르는 한자를 발음하다 보니 겹치는 말이 수십 개, 수백 개씩 튀어나오고 있다. 그 바람에 중국은 문맹률이 아직도 높고 근대화도 늦어지고 있었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노신(魯迅,1881-1936)이 오죽하면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라고 걱정했을까.


     노신(魯迅),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고 설파


  그런데 지금 중국의 10대와 20대 신세대들에게서 이러한 한맹과 실사증이 나오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중국인들의 컴퓨터와 스마트 폰 사용이 우리보다 다소 늦긴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보편화되었다. 

컴퓨터와 스마튼 폰을 즐겨 쓰는 중국 신세대들은 어떻게 글자를 써낼까? 우리는 한글과 로마자 키보드를 사용하여 직접 써 간편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많은 글자를 자판에 넣지 못하니 간접적으로 써낼 수밖에 없다. 


병음을 활용한 입력방법을 보자. 터 기(基)를 쓰려면 먼저 로마자 ji 를 쳐야 한다. 이때 130개도 넘는 글자가 튀어 나온다. 이 글자 중 마우스를 이리저리 돌려 基를 찾아내 다시 키보드를 눌러야 비로소 한자 基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때 기초(基礎), 기본(基本) 등 상용어가 딸려 나와 (초)礎나 (본)本을 따로 찾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은 있다. ji 라는 발음 하나에 나오는 130여개가 넘는 글자! 한자에 대한 기초지식이 좀 부족하거나 한자 실사증이 있는 그들이 과연 어느 곳에 마우스를 댈 것인가?


  표음문자를 쓰는 우리나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통째로 글자를 잊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컴퓨터나 스마트 폰에서 사용되는 한자의 입력체계는 영어와는 달리 이처럼 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니 불편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하는 어려움이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 폰 이용이 일상화 된 지금, 중국학생들은 한자를 직접 굳이 손으로 쓸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로마자를 이용한 한자 찾기’를 하는 중국인들은 글자를 보고 그것이 무슨 뜻이고 그 발음도 알지만 정작 쓸 줄은 모르는 신문맹, 즉 실사증을 갖게 된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중국인들이 ‘말은 잘하지만 글자를 쓸 줄 모른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최근 이런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주어 중국인들을 각성시키고, 더불어서 교육 효과까지 거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2013년 처음 등장한 중국 국영방송 CCTV의 ‘받아쓰기 대회’가 그것이다.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이 《中國漢字聽寫大會중국한자받아쓰기대회》에서 중국 31개 성 및 홍콩, 대만, 마카오 등 각 지역의 중·고등학생 청소년 대표들이 참가하여 실력을 겨루고, 승자진출전토너먼트 방식으로 최후의 승자를 가렸다. 


물론 어려운 한자도 또박또박 잘 써서 최종 우승을 한 참가자의 실력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나, 방송 중 각 지역에서 제일 우수하다는 일부 참가자들이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면이나 이런 주제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한번 되짚어 볼 만하다.


      어려운 한자 대신 한글사용 권유했으나 중국의 자존심 때문에 불발


1911년 쑨원(孫文)이 이끈 신해혁명 후, 중화민국은 국음통일주비위원회(國音統一籌備委員會)를 구성하였다. 우리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님이 전하는 일화에 의하면, 이 위원회는 한자폐지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했고, 만약 한자를 없앤다면 어떤 문자를 도입해서 사용해야 좋을지 논의했다고 한다. 


이때 회의에 참석한 외국 선교사 게일이 한글만큼 뛰어난 문자는 없다며 한글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글을 채용할 수 없었다. 이른바 '중화의 자존심' 때문이었고 더구나 한글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망국(亡國)의 글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대신 채택한 것이 주음부호(注音符號)였다. 하지만 이 부호는 문맹을 퇴치하는 여전히 불편했고 역부족이었다.


  1954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한어병음자모를 만들 때에 참여한 어문학자들은 중국어는 로마자로 표기되어야 하고, 미래의 언젠가는 이것이 한자보다 더 통용되는 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래야 문맹이 완전히 없어질 수 있다고 예견하였다. 


실례로 베트남은 고대부터 우리처럼 한자를 써 왔지만 19세기 프랑스 지배를 받으면서 한자어가 차용되어 스며든 베트남어를 로마자로 표기하였고, 그 후 한자는 점차 없어지고 로마자에 8개의 성조를 표기하는 베트남 글자가 통용되고 정착되었다. 우리도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로 한자를 표기해 오다 지금의 한글로 완전히 정착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중국은 앞으로 어찌해야 할까? 앞서 말한 대로 이 스마트 폰 시대에 한자를 더욱 잘 쓰도록 해야만 할까? 아니다. 그 중국 지인은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언급된 어문학자들의 예견대로 한어병음자모 즉, 로마자로 써야 한다. ‘吃飯了嗎?(밥 먹었니?)’ 의 로마자 표기는 ‘chī fàn le ma?(츠판러마?)’ 이다. 


         중국은 완전한 문맹퇴치 위한 역사적 선택의 기로에  


굳이 한자로 쓰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알아볼 수 있다. 한자를 쓸 필요가 없이 그냥 로마자로만 써도 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잘 안되겠지만 몇 년 쓰다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베트남이 그 좋은 예다. 한국도 한글전용 정책을 앞두고 한자를 안 쓰면 큰 일 날듯이 말했지만 지금 한자어일지라도 한글을 썼다 해서 잘못 알아보거나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늘날 한국의 국력이 좀 높아지면서 인도네시아의 부톤 섬 6만 명 주민들이 자기들의 '찌아찌아'어(語)를 한글로 표기하고 있다는 보도도 봤다. 만약 한 세기 전 한국 국력이 어지간했더라면, 동아시아 전체가 한글을 사용했을 수도 있었다. 중국이 완전한 문맹퇴치를 위해 1910년대 게일이 말한 대로 한글을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미 70여 년 동안 표기하고 발음해 온 한어병음자모를 어찌 되돌려 없애겠는가? 어문학자들의 주장처럼 한자를 쓰지 말고 로마자로만 표기하면 어떨까? 사실 한자 1천여 자만 알아도 신문과 방송을 보거나 일생 대화에 거의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도 수 높은 안경을 써야 비로소 잘 보이게 되는 수 천의 그 복잡한 그림(글자)을 다 익혀야 하는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글자를 학습하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줄이고 거기에 사용되고 낭비되는 뇌세포를 미국 등 서방 국가에 뒤지지 않는 백년대계 근대화를 이루는데 데 써야 하지 않을까? 만시지탄이지만 이 시점에 신해혁명 당시 한글을 그들의 언어로 채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대안을 내놓는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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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11 17: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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