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 와인스쿨원장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어떤 와인 맛을 보고, 어느 지방, 몇 년도, 무슨 와인이라고 알아맞히는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꾀 있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천만에 말씀이다. 만약 우리가 하루 100 개 씩 맛을 보고 그 맛을 외운다고 가정할 때, 1년이 지나면 36,500개의 와인 맛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100만 가지가 넘는다. 게다가 해가 바뀌면 또 다른 연도의 동일한 와인이 36,500 개가 또 나오기 때문에 평생을 아무리 노력해도 36,500개 와인만 맛보다가 그르치게 된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만 12,000여 개의 샤토가 있고, 하나의 샤토에서 보통 3~4 가지 이상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니, 와인 맛을 알아맞힌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텔레비전에서 기가 막히게 잘 맞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때는 미리 그 범위를 정해주거나, 촬영하기 전에 미리 맛을 본 후 그것을 맞히는 것이다.
와인 감정 전문가라고 해도 자기가 전문으로 감정하는 지방의 와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많은 와인의 맛을 모두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품종의 특성을 파악하고, 오래된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방 별로 어떤 스타일인지 아는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와인에서 동물 냄새, 블랙 커런트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전문가들이나 책자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그대로 나에게도 느껴진다면 좋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뉘앙스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제 와인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익숙해지는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맛있다”, “맛없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충분하다. 와인 맛을 알아맞혀서 어떤 이득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나에게 맛있다, 맛없다고 느껴지면 그만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 맛을 가격과 비교해서 구입을 할 것인지 결정해서, 잘 팔아 치우든지 아니면 맛있게 마시면 더 이상 바랄게 뭐가 있을까? 테이스팅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와인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즐거움을 주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와인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의 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