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간의 삶은 숱한 문제에 부닥치고 헤쳐 나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크고 어려운 문제가 있는가 하면 사소하고 쉬운 문제도 있다. 적절한 해법을 찾아 올바로 적용하면 심각한 문제도 무난히 풀린다. 반대로, 부적합한 해결책이 동원되면 당초 대수롭지 않았던 문제조차 더욱 커지고 어려운 것으로 바뀌고 만다.

 

흔히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라고 하고,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성은 그리 신통한 게 못 된다. 이런 주장에 인류가 이성을 통해 이룩한 문명과 찬란한 성과를 들먹이며 반박할 수도 있겠다. 


철학자나 과학자에게 물어보면, 인간의 이성 능력에 대한 평가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적응에 대해 끝없는 논쟁을 벌일 것이다. 특히 철학은 인류가 사고하기 시작한 이래 여태까지 이 문제와 씨름 해 왔으니까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인간이 뭔 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것은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다. 한 개인으로도 그렇고 '인간 종'(species)이라는 집단으로 봐도 그렇다. 경험은 수많은 시행착오, 실수와 실패, 오류 투성이로 채워진다. 작은 개선이나 눈에 띄는 발전, 비교적 큰 성공, 이 모두가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흔히 인용되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참으로 단순 명쾌한 진리가 아닐 수 없다. 

 

험은 이처럼 개선이나 발전, 성공의 필수적 요소이지만, 항상 직접적인 체험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흔히 ‘현자(賢者)’라고 불리는 사람은 간접 경험이나 추체험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케 한 존재이다.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경험을 공유하지 않고도 직접 경험을 통한 것과 다름없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말하자면, 최소의 비용으로 엄청나게 값진 성과를 가져오는 사람이다.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의 한 대목이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봐/ 고인을 못 봐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떨꼬?”

 

옛 사람의 가르침을 스승으로 삼아 자기 인생을 산다는 뜻이다. 퇴계는 간접경험을 통해 비약적 자기 발전을 이루는 현인의 길을 가려고 한 것이다. 좋은 선례, 모범적 사례만이 아니라 오류나 실패조차 훌륭한 가치를 지닌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고사성어가 있지 않은가. 《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에 나오는. 

 

다른 산에서 나는 보잘 것 없는 돌멩이라도 자기의 옥(玉)을 가는 숫돌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말이다(“他山之石, 可以攻玉”).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도 자신을 수양하는 거울로 삼을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군자도 오히려 소인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아 자신의 행실을 반성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자의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세 사람이 같이 걸어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좇아서 하고 나쁜 것은 (반면교사로 삼아 나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바로잡으니 좋든 나쁘든 모두 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지혜로운 인생이란 수많은 타인의 빛나는 성취와 긍정적 사례는 물론이고 실패나 오류, 잘못마저 간접경험을 통해 자신의 개선과 성장의 계기로 삼는 그런 삶인 것이다.

 

지혜로움의 스펙트럼에서 현자와 정반대되는 ‘어리석은 인간’을 상정해 볼 수 있겠다. 즉, 직접경험을 통해서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비슷한 오류와 실패를 계속 반복하는 사람이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엄연히 실재함은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격언이 회자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떠한 국가의 역사 또한 그 나라의 다양한 성공과 실패, 오류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한 개인으로서 현명한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은 지도자나 집단, 예컨대 지혜로운 통치자나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슬기로운 자(집단)는 남의 다양한 경험을 자기 혁신과 발전의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하는 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개인과 집단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어느 모로 보나 지혜는 꾸준히 추구할 만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3-10-12 17:30:2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포토뉴스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대학생 베트남 해외자원봉사 앞두고 사전 준비교육 가져
  •  기사 이미지 몽골 사막에 제2의 한국 세워졌다
  •  기사 이미지 DAC's Relief Efforts in Turkey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