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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기획총괄위원장, 전 동아일보기자






뉴욕의 심장부는 42번가에서 45번가에 이르는 타임스퀘어이다. 스퀘어라고 해서 네모꼴 광장은 아니지만, 하루 유동인구가 200만명이나 되므로 가히 ‘세계의 교차로’라고 할 수 있다. 1851년에 창간한 뉴욕지방의 대표신문인 ‘뉴욕타임스’가 이 근방에 자리함으로써 타임스퀘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요즘은 방송이나 인터넷 때문에 종이신문이 시한부 생명으로 몰락하고 있지만, NYT는 인근에 새로운 고층빌딩을 지어 사무실을 옮겼으며 아직도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이곳 중심부에 타임라이프라는 유흥극장이 맨 먼저 들어섰기에 타임스퀘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농업국에서 상업국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물욕을 앞세운 사회적 부정과 극심한 빈부격차로 겉만 번지르한, 이른바 ‘도금시대(Gilded Age)’가 찾아왔다. 20세기 초부터 뉴욕 중심부에는 하역노동자들과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바오리’라고 하는 다소 저질스런 웃음을 자아내는 극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40년대 영화의 대중화에 맞서 버라이어트쇼를 중심으로 한 성인극장으로 변신했다가 요즘은 뮤지컬 중심의 새로운 문화형태로 진화했다. 타임스퀘어에는 디즈니가 인수한 뉴 암스텔담극장을 비롯하여 엠파이어, 허드슨, 뉴 빅토리, 벨라스코, 슈베르트 등 대규모 극장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실과 같은 이름인 리세움 극장은 1903년 개관 이래 연극공연만 지켜오고 있다.


 20세기 초만 해도 상류층 관객들은 마차를 타고 외출을 했으며, 극장 주변에는 마차가 교행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었으므로 극장가는 브로드웨이로 통했다.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이나 뮤지컬 오페라 등을 처음 무대에 올리는 날에는 모든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타임 스퀘어에서 밤을 지새웠다. 새벽에 뉴욕타임스의 공연평을 보고 앞으로의 일정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호평이면 극장과 장기계약을 하고 평가가 좋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에 막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배우들은 부평초 같은 삶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다, 브로드웨이는 공연의 메카이므로 이곳은 장기투숙하는 예술인들을 위한 저렴한 호텔이 즐비했다. 


 노벨문학상과 4번의 퓰리쳐상을 받은 미국의 최고 극작가 유진 오닐도 타임스퀘어의 한 호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제임스 오닐이 ‘몬테크리스트 백작’의 주인공역을 맡은 유명 연극배우였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난 호텔은 이제 고층빌딩으로 바뀌었고, 1층 스타박스 가게 바깥에 유진오닐의 출생지를 나타내는 조그만 동판표지가 붙어있다. 


 1956년에 발표한 유진 오닐의 대표작 <밤에로의 긴 여로>는 자신의 비극적 가족사를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유진 오닐의 딸 우사 오닐이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번의 이혼경력이 있는 중년 배우 찰리 채플린과 결혼을 강행하자 유진 오닐은 끝내 딸과 의절하고 만다. 타임스퀘어는 낮보다 밤이 훨씬 화려하다. 불야성(不夜城)이라는 이름을 탄생시킨중국 상하이와는 비교가 안 된다. 


새해 카운터 다운을 알리는 연말연시에는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하루 전부터 자리다툼을 한다고 한다. 2013년 새해에는 가수 싸이가 이곳서 강남스타일을 열창한바 있다. 이곳은 원래 브로드웨이의 각종 공연을 알리기 위해 광고가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의 자존심 대결장이 되다시피하고 있다. 우리의 삼성과 현대, LG 등의 화려한 광고를 여기서 만나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전광광고는 표시내용과 조도(照度), 시간 등에 제약을 받기 마련인데, 이곳은 광고자유지역이라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이를 벤치마킹하여 서울시도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주변을 옥외광고자유표시구역으로 설정했다.


 알프스를 체험하지 않고서는 니체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콩코드의 웰든 호수에서 헨리 소로우를 읽어야 제맛이 나듯이,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본고장에서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 위해 마제스틱극장으로 갔다. 30년 이상 최장기 공연 중인 이 작품은 영화로도 상영되었고 한국에서도 뮤지컬로 공연된바 있기에 신기함은 떨어지지만, 천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멋진 음악이 더욱 친근감을 준다. 


특히 브로드웨이서 6번째 무대인 이 작품에서 유령역으로 출연한 벤 크로포드의 감동적인 노래는 1천여 관객을 사로잡는다. 원래 프랑스 소설을 영국서 각색했기에 등장인물 의상은 프랑스식이고 대사는 영국식영어이며 관객은 미국인이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부스극장(Booth Theatre)은 19세기 연극계의 최고 가문인 부스가 형제의 엇갈린 운명과 사연이 있다. 남북전쟁에서 남군 총사령관인 로봇 리 장군이 북군의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한지 6일만인 1865년 4월 14일 워싱턴 포드극장에서 남부연합정부 추종자였던 유명 배우 존 윌크스 부스가 연극관람 중인 링컨대통령을 암살했던 것이다. 


범인 윌크스 부스는 부스 형제의 막내로서 볼티모어 가족묘에 묻혀 있지만 비석에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아 방문객들은 링컨 얼굴이 새겨진 페니동전을 올려놓는다. 형 에드윈 부스는 햄릿역으로 유명한 배우였으나(동생은 시저역으로 유명) 사건 직후 무대에서 연기를 못하고 침묵으로 이어지다가 객석의 기립박수에 힘입어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이 극장은 에드윈 부스가 1869년에 건립했으며 햄릿으로 분장한 그의 동상이 뉴욕의 작은 공원 그래머시 파크에 있다.

 

 여행이 항상 즐겁고 가슴 벅찬 일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비극현장을 직접 찾아봄으로써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행을 'dark tourism'이라고 한다. 유럽에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다면 미국은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가 있다. 그라운드 제로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지역을 일컫는 말로 탄생되었다.


 조국을 떠난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 국민이 기댈 곳은 성조기밖에 없어서인지, 이곳은 항상 추모객들로 무척 붐빈다. 미리 표를 구입하고 오전 일찍 나섰는데도 9.11추모박물관에 입장하는데 빗속에서 2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일당 19명이 민간항공기 4대를 납치하여 뉴욕 최고층 빌딩인 세계무역센터에 돌진함으로써 110층 쌍둥이 빌딩의 입주자와 비행기 탑승객, 소방관, 행인 등 90개국 297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기념 건축물과 지하 박물관이 있다. 건축 디자인 공모에 63개국에서 5201개의 작품이 들어왔는데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는 컨셉으로 응모한 유태계 청년 마이클 아라드가 선정되었다.


바깥에는 두 개의 사각형 공간 속으로 눈물처럼 물이 흘러들어가고 난간에는 희생자 명단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임신부의 경우 이름 없는 태아(胎兒)까지 엄마 옆에 표기되어 있으며 회사 동료나 가족들은 생존시처럼 함께 모여 있다. 생일을 맞은 희생자 이름 위에는 꽃송이가 헌화된다. 


 9.11테러 때 모든 사람들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먼저 빠져나가려고 야단이었는데, 이들을 구하려고 불길 현장에 뛰어들었던 소방대원, 경찰, 구급대원들과 마주치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으로써 철골이 화염에 녹아 주저앉음으로써 전체 희생자의 16%나 되는 구조대 412명이 숨졌다. 


이들의 감동적인 모습은 기념품가게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하 박물관에는 사고현장의 타다 남은 잔해물와 감동어린 스토리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참담한 비극의 현장을 말로써는 형언(形言)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미 2천년 전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읊은 적절한 시구(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가 벽면 가득히 새겨져 있다. 


우리의 6.25 노래가사 도입부인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과 같은 내용이라고 하겠다. 시를 떠받들고 있는 벽면은 사고당시의 파란 하늘색 조각 2799개가 천국으로 간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는 높은 건물을 마천루(摩天樓)라고 한다. skyscraper, 즉 하늘을 문질러 상처낸다는 말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를 겪고난 후 지상의 인간들은 하늘나라가 궁금하여 바벨탑을 세운다. 인간이 하늘 쪽으로 올라오는 것을 도전이라고 생각한 신은 인부들의 말이 서로 통하지 않게 하는 벌을 내린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공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도 외국어 통역봉사대원을 BBB(Before Babel Brigade), 즉 바벨탑 이전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고층건물이 가져오는 재앙, Skyscraper Curse라는 속설이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들어섰을 때 대공황이 와서 임대가 되지 않아 한동안 텅 비어 있었기에 ‘엠프티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1970년대 중반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가 최고층으로 등장하자 석유파동이 일었고, 그 보다 높은 말레이시아 쌍둥이 빌딩이 들어서자 동남아가 외환위기에 휩싸였다. 이를 갱신한 두바이의 168층 부르즈 갈리파의 시공사도 부도위기를 맞으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의 63빌딩은 소유주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세웠지만, 불행하게 건물을 넘겨야 했고, 새롭게 등장한 123층 롯데타워 주인도 한동안 기업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애도의 눈물이 폭포가 되어 계속 아래로 흘러내리고, 추모박물관이 지하 깊숙이 내려간 것은 재앙을 피하려는 겸손의 상징인지 모르겠다. 시애틀에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 본사의 5층짜리 캠퍼스 타운이 새삼 돋보인다.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던 시인 신동엽은 이미 오래 전 ‘서울’이라는 시에서 “서울 사람들은/ 벼락이 무서워/ 피뢰탑을 높이 올리고 있다”고 우려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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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0-15 23: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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