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한화솔루션고문
- 현 한화솔루션 고문
- 현 학교법인 북일학원 이사장
- 산문집 ”시간 길어 올리기"
- 전 대한일보, 동아방송 기자
*지난 10월23일은 음력 9월9일, 중양(重陽)일이었습니다. 시(詩)를 짓고 국화로 전을 부쳐 먹는다는 낭만이 가득한 그 가을날에 덕수궁에서 멋진 행사가 열렸습니다. 10 여 년 전부터 회원이 됐던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의 날 입니다.
월요일은 덕수궁이 휴관하는 날인데 우리 단체가 하루를 전세 낸 것 이지요. 문화재청을 제일 많이 돕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누리는 호강입니다. 물론 주최자는 문화재청이고요.
1시부터 덕수궁 후문이 열리고 새로 지어 선 보인지 얼마 안 되는 돈덕전을 느긋하게 둘러본 회원들은 이어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역시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둘러 보았습니다. '느긋'이란 말을 두 번이나 쓰는 이유는 두 곳 모두 시민들의 인기 있는 가을 나들이 장소라 평소에는 예약을 해야 될 정도로 북적거리기 때문입니다.
2시부터 회원의 날 메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장사익과 친구들의 덕수궁 가을 햇살'이라는 가을답고 낙엽스러운 음악회가 열린 거지요. 석조전 앞 너른 마당에 무대가 차려졌습니다. 장사익의 밴드는 공연 때마다 한결같습니다.
트럼펫의 전설 최선배 선생은 81세인데 변함없는 폐활량, 매끄러운 텅잉으로 장사익의 탁한 고음과 찰떡 같은 앙상블을 이룹니다.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드럼, 웅장한 북들에 해금, 거기에 뭉친지 30년 됐다는 아카펠라 그룹 '더 솔리스트'까지 모두 멋진 합(合)을 이룹니다. (아래 사진 참조)
'Autumn leaves' 가 재즈로 편곡 되어 오프닝 곡으로 정취를 불러냈고ㅡ 장 선생의 신곡 "여행", "역", "아버지"와, 간판 같은 노래ㅡ"찔레꽃", "님은 먼 곳에", "봄날은 간다"가 이어졌습니다. 앵콜 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떼 창으로 번졌습니다. 언제 목 울대 수술을 했냐는 듯 선생의 목청은 푸른 가을 하늘로 멀리 멀리 날아갔습니다.
우리 회원 모두가 가을을 맘 껏 누리고 추경(秋景)이 되었습니다. 스폰서 업체가 나누어 준 커피는 햇살 가득한 고궁의 오후를 더 넉넉하고 구수하게 해 주었고요.
이 얘기를 들은 한 친구가 '나도 좀 데려가지 왜 안 불렀느냐'고 타박을 했습니다. “지나간 일이라 어쩔 수 없지만 우선 우리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회원이 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회비를 매달 1만원 씩 만 내면 된다며 자세히 알려줬는데 어떻게 했는지 확인은 안 했습니다.
이 단체의 회원은 1만6천여명 입니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적극적인 이사장님께서 그동안 억척스레 회원 증가 활동을 벌이신 결과입니다. 한 달 만원이야 쉽게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생각보다 회원 수가 그리 늘지 않습니다. 이 단체는 2007년 설립된 후 회비와 찬조금등을 기반으로 민간차원의 문화유산 보존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 쓰고 싶은 얘기는 그러나, 이 단체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매월 자동이체를 통해 후원하는 단체가 몇 개씩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의 경우 카톨릭 관련 단체등 몇 곳에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한 달 만원씩 입니다.
TV를 통해 유니세프 같은 여러 국제 구호단체들이 “한 달에 만원이면 당신은 이런 자선을 베풀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광고를 많이 보셨겠지요. 참담한 화면을 먼저 보여주지요. 감정소구(感情訴求)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 바로 이런 경우들인 것 같습니다.
가까운 친구는 그런 지원을 통해 지구 반대편 어린이의 부모 같은 후원자가 되었으며 그 어린이는 자신의 사진과 고마움을 표시하는 손 편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습니다. 옆에서 보아도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요. “후원금 중의 상당 부분이 관리비나 관계자들 출장 경비로 거의 다 들어간 대서 '난 그런 거 안 한다'” 고 말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습니다.
자세한 내역이야 알 수 없습니다 만, 작은 지원들이 모여서 결국 큰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습니다. 동쪽 누군가의 마음이 지구 저편의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지구라는 동네에 같이 사는 한 가족으로서 그런 도움은 별난 자선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나는 미의(微意)를 전달하는 일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는 그 알량한 베풂이라는 “착한 일”이 내가 알게 모르게 짓고 있는 잘못을 탕감시켜 주리라 은연중 믿고 있는 위선에 빠져 있지 않은지 늘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