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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 한국자원봉사신문 기획총괄위원장

- 전 동아일보 기자





국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는 했지만 국토가 동부해안선을 따라 길게 치우쳐 있어서 영토확장이 시급한 과제였다. 유럽 강대국 소유 영토는 돈을 지불하고 매입했지만 인디안 주거지나 멕시코 같은 약소국의 소유지는 무력으로 강탈하는 것이 초창기 미국의 국토확장 수법이었다. 


 그런데 1803년 프랑스로부터 거대한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에 구입함으로써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루이의 땅’이라는 루이지애나는 “짐이 국가다”라는 루이14가 점령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 뉴올리언스 중심의 작은 주가 아니라 당시에는 몬테나, 미네소타, 네브래스카, 갠사스, 미주리, 아칸소 지역을 포함하는 한반도의 10배나 되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강물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이곳 내륙지방은 씨앗만 뿌리면 저절로 곡식이 자라는 1등급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가 옥토라고 자랑하는 호남평야가 5등급지에 불과한데, 제퍼슨 대통령은 평당 0.7원씩을 주고 내륙의 금싸라기 땅을 차지했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셈이다. 


 전쟁비용이 절실하게 필요한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가 라이벌인 영국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여 신생 독립국인 미국에 헐값으로 넘긴 것이다. 다만 미시시피 강을 통한 물류의 요지가 멕시코에 너무 가깝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미국은 텍사스와 플로리다 일부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차제에 캘리포니아까지 차지함으로써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로 향하는 길을 확보했던 것이다.


 사실 미국이 필요했던 곳은 미시시피 강 하구의 무역항 뉴올리언스였다. 17세기 말 프랑스 탐험대가 미시시피 강 하구의 비옥한 삼각주의 교통 요지인 이 곳을 선점함으로써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지역의 중심 마을은 프랑스 섭정자 오를레앙의 이름을 딴 신도시 누벨 오를레앙(Nouvelle Orleans)이었으며, 이를 영어식으로 옮긴 것이 뉴올리언스이다.


 미국에서 가장 프랑스식 풍취가 짙은 뉴올리언스에는 아예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라는 역사적 풍류 지역이 있다. 19세기 초까지 지배층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였으며, 요즘도 뉴올리언스에서 캐나다로 오가는 비행기에서는 프랑스어 안내방송을 한다. 프렌치 쿼터의 중심거리가 버번 스트리트인 것은 프랑스의 브르봉 왕가를 지칭한 것이다. 


타벅스가 전 세계를 풍미하고 있지만 이곳에는 유럽 흥취가 자욱한 170년 전통의 카페 ‘뒤 몽드’ 앞에 언제나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치커리 뿌리에다 알코올을 약간 가미한 카페오레와 하얀 설탕을 눈송이처럼 뿌린 베네(Beignet)라는 도넛이 이 가게의 명물이다.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발상지답게 루이암스트롱 공항이 관문이다. 17세기 말부터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노예로 이주해옴으로써 그들의 민속음악이 재즈로 거듭난 것이다. 이주 초기에는 이들에게 찬송가보다는 아프리카적 요소가 짙은 타악(打樂)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데 제격이었고, 이것이 재즈(아프리카어로 '섹스'를 의미하는 ‘Jass’에서 유래)로 발전된 것이다. 


270년 전통의 프리저베이션 재즈 홀도 낡은 창고 건물에다 등받이가 없는 나무의자 몇 개가 있을 정도로 소박하다. 링컨 대통령이 젊은 시절 노예시장을 목격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곳이 뉴올리언스였는데 지금도 이곳 주민의 70%가 흑인이며 미국에서 가장 빈곤층이 많은 곳이다. 거리 곳곳에 낙서 글씨인 그래피티가 모든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1960년대 초 비틀스를 위협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영국의 5인조 보컬 그룹 ‘애니멀즈’의 대표곡 ‘해 뜨는 집(The House of Rising Sun)’은 뉴올리언스가 배경이다. 노름꾼 아버지와 삯바느질 어머니, 살림이라고는 여행 가방 하나 뿐인 떠돌이 생활보다는 교도소가 그립다는 부정적인 가사 내용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물론 서민들이 아귀다툼을 하며 살아가는 생활 터에는 가난한 예술가들도 몰려들었고, 그 속에 낭만도 있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미국 개척정신 문학의 선구자 마크 트웨인은 ‘자유의 길’이라는 미시시피 강변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강의 깊이 두 자(二尺, 3.6m)를 “마크 트웨인” 하며 외치는 수로원으로 일했기에 본명인 사무엘 클레멘스를 버리고 마크 트웨인(two의 사투리)을 필명으로 바꿨다. 


국의 황하처럼 흙탕물에 가까운 미시시피 강에는 연기를 품던 옛날의 화륜선(火輪船) 대신 증기선이 오가고 있다. 아메리카의 원래 주인이던 샤인언, 슈족의 인디언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서쪽으로 내몰리면서 피눈물을 삼킨 곳도 미시시피 강 하구이다.


 뉴올리언스의 중심인 잭슨광장에는 백인우월주의자 앤드루 잭슨장군의 기마상이 눈길을 끈다. 미국 최초의 서민 출신이자 아일랜드계인 제7대 대통령 잭슨은 선거유세 도중 부인이 별세함으로써 백악관에서 홀아비로 지냈다. 


그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부활절 시즌에 피는 고향의 목련을 백악관에 옮겨 심었는데 이를 ‘잭슨 목련’이라고 한다. 2014년 4월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세월호 희생자가 많은 안산 단원고에 백악관의 잭슨 목련 묘목을 기증하면서 “목련은 봄마다 새로 피어나는 부활을 의미합니다”라고 했다.


 뉴올리언스는 개방과 포용의 도시다.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파티를 즐기며 느긋하게 지내는 Big Easy도시로 통한다. 특히 자마이카, 바하마 등지에서 온갖 럼주가 유입되므로 미국의 남단 도시가 아니라 ‘카리브 제도의 최북단 도시’라고 한다. 


칵테일이 워낙 유명하여 칵테일을 제조 소개하는 칵테일 박물관인 새저락하우스가 있는가 하면, 버번위스키에 레몬이 가미된 쌉싸름한 맛의 '새저락'과 럼주에 오렌지를 넣은 달콤한 '허리케인'은 시당국이 추천하는 공식 칵테일이다. 세계 칵테일 축제와 칵테일 컨퍼런스도 이곳에서 열린다. 


 뉴올리언스에는 ‘욕망의 거리(Desire Street)’가 있다. 몰락해 버린 남부의 지주 가문 출신 숙녀 블랑슈가 뉴올리언스에 가서 억눌린 욕망을 분출시키다가 결국 정신이상자가 되어 파멸해 가는 모습을 그린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요즘도 고색창연한 트램이 느긋하게 시내를 오가고 있다. 


<유리 동물원>,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등으로 1950년대를 풍미하던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집필의 산고를 겪었던 거리와 작품 속의 블랑슈가 종착역인 이상향으로 향하던 추억의 전차, 생활의 터전이던 조폐창 등을 2005년 8월 그 악명높은 마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모두 삼켜 버렸다.


뉴올리언스는 너무나 자주 허리케인에 시달리다 보니 건물 유리창도 쇠그물에 이중창으로 가렸고 안내 간판도 바람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대부분 도로에 새겨져 있다. 


 런 파커 감독이 할리우드 100주년 기념으로 1987년에 만든 영화 <엔젤 하트> 역시 주 무대가 뉴올리언스이다. 뉴욕의 사립탐정 해리 엔젤은 실종된 가수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고 뉴올리언스로 향한다. 그가 만난 사람은 모두 시체로 발견되고 마침내 초능력을 가진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엔젤은 자신이 찾던 사람이 예전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자기 자신임을 알고 절망에 허덕인다. ‘악마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던 이 영화는 너무 난해하여 우리나라 극장에서는 영화가 끝난 후 줄거리를 자막으로 올리기까지 했다.


 이 같은 끔찍한 초자연적 현상을 예견한 영화나 노래 등이 마침내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통해 현실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뉴올리언스의 80%가 물에 잠기고 6만명이 죽음을 피해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인간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 때문에 신이 재앙을 내린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당시의 재앙은 해수면보다 낮은 이 지역을 안전에 대한 대비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개발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게다가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쏟아 붓느라 뉴올리언스 지역의 홍수 통제를 위한 연방 예산을 대폭 줄임으로써 재앙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러나 뉴올리언스 재난 때 정부가 아니라 아무 연고도 없는 각지 사람들이 몰려와 수천명의 생명을 구하고 생필품을 공급하는 사랑을 베풀어줌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길을 찾은 ‘재난유토피아’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미국이 인명과 재산을 잃고 선진국이라는 자존심에 먹칠을 한 이유는 테러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제방이 무너지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같은 대형 사고도 인지과정이 동맥경화처럼 장애를 받기도 하지만, 비록 위험의 조짐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상위의 비전문가들에 의해 경시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올리언스 한복판에는 프랑스가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승리의 계기를 만든 잔 다르크의 금빛 동상이 진군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17세의 소녀 잔 다르크가 함락 직전의 도시 오를레앙을 구해서 프랑스의 영웅 성녀로 추앙 받았지만, 허리케인에 함락 당하는 미국의 오를레앙은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재난에서 나라를 구하는 현대의 영웅은 철저한 안전대책이다. 철저한 안전대책이야말로 뉴올리언스가 전 인류에 남긴 값비싼 교훈인 것이다. 해 뜨는 집이 이제는 교도소가 아니라, 낭만의 도시 뉴올리언스에 다시 찬란하게 비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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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7-06 15: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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