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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한화솔루션 고문

- 현 학교법인 북일학원 이사장

- 산문집 ”시간 길어 올리기"

- 전 대한일보, 동아방송 기자





*서울 시청 앞 너른 광장은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목,금,토,일 나흘간 야외 도서관으로 변한다. (한 여름 혹서기는 제외)  종합 안내소에서는 테이블 , 양산, 매트, 종이의자, 코스튬 모자까지 빌려준다. 물론 사방에는 각 분야별 5천 여 권의 책들이 가득 쌓인 간이 책 부스들이 군데군데 있다. 


엎드려 책을 읽는 모양의 대형 풍선이 가운데 놓여있고, 사람들은 편안한 의자에 눕거나 기대어 책들을 읽는다. 어린이도 많고 SNS만 붙들고 있던 젊은이들도 여기서는 책에 푹 빠져있다. 이 곳에서 자주 보고 들었던 머리띠, 투쟁, 붉은 글씨의 플라카드,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아우성 같은 소리들이 잠깐 오버랩 되었지만 책의 향기, 평화로움, 싱싱한 기운에 금세 덮혀 버린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수 십 명이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주 긴 책상이 두 개 있다. 뉴질랜드 늪 지대 진흙 속에 몇 만 년 묻혀 있던 소나무과의 나무를 이태리에서 가공해 만들었다는 길이 12미터, 폭 1.8미터의 이 너른 책상에는 빈자리가 없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 책상을 폐쇄(못 앉게 했다)한 적을 빼고는 늘 빼곡히 차 있다. 


책을 여러 권 앞에 쌓아 놓은 채 졸고 앉은 노인, 열심히 책을 베끼는 학생, 노트북을 펼쳐 놓고 책과 번갈아 보는 사람. 책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기분 좋은 공간이다. 


『책을 하루 종일 빼 보기만 해도 눈총 주지 말 것, 책을 베끼더라도 제지하지 말 것, 혹 책을 훔쳐가는 사람을 보더라도 절대로 망신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타이를 것.』 교보문고 창업자의 지침이 잘 지켜지고 있는 가운데 이곳은 책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든다는 대도 늘 북적인다.

 

*제주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10분 거리에 우도(牛島)가 있다. 이곳에는 “밤수지맨드라미”라는 예쁜 이름의 책방이 있다. 제주에 마음 붙이고 사는 신혼부부가 꾸려가는 작디 작은 책방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책방인 셈인데 소박하기 그지없는 인상이 꼭 오누이 같은 이 부부는 하루에 책 열 권만 팔았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문 닫지 않고 이 책방이 내내 열려 있기를 바라는 말 없는 응원을 보냈다.

 

*한 2년 됐나? 트위터의 기업용 버전 야머(Yammer)의 설립자 데이비드 색스는 뉴욕타임즈 칼럼을 통해 “삼청동 숲 속 도서관”얘기를 썼다. 『나는 1년 전 한국 서울의 삼청공원 도서관에서 미래를 보았다. 숲이 우거진 고원에 있는 소박한 건물에서 사람들은 바깥의 나무를 바라보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이 도서관은 첨단 기술에 대한 해독제로 특별히 설계됐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실었던 중앙일보는 동대문구 전농동 둘레길 초입에 문을 연 “배봉산 숲 속 도서관”도 소개하면서 주민들의 공동 거실이자 사랑방이자 서재가 된 이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이소진의 도서관을 이용할 사람들을 향한 애정을 들려주기도 했다.

 

*가끔 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택가나 도심 곳곳에 공중전화 박스 모양의 간이 시설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저게 뭔가 하면서도 지나쳤지만 몇 개가 더 눈에 띄어 가 보았다. 유리문 안에는 책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눈치로 어림잡아도 소설이나 산문집 기타 무겁지 않은 교양서적들 같았다.


맨 밑 칸은 어린이용 책들이다. 책장 옆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름은 “열린 책방”. 2009년 11월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작되었고 지금은 프랑크푸르트 시민과 방문객들을 위한 연중무휴 도서관이란다. 유지 관리자의 연락처도 적혀 있다. 아무런 절차 없이 자유롭게 보고 싶은 책을 집어 갔다가 다 보면 다시 갖다 놓는 시민을 위한 길거리 도서관이다.


 



*세상이 아무리 이악스러워져 가도 책 근처에 있는 이들만은 모두 맑은 얼굴을 갖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서울 시청광장, 교보문고의 긴 책상, 제주도의 작은 책방, 서울 도심 숲 속 도서관, 프랑크프르트 길거리 책장 근처, 그리고 책들이 쌓여 있는 더 많은 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모여도 『시(詩) 삼백(三百)편만 읽으면 생각이 바르고 사악함이 없다』는 공자님의 사무사(思無邪)가 21세기 챗GPT의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려니--.


내가 좋아하는 정선 아리랑, 버전 많은 여럿 중에 한 대목이다. 『진 흙 속의 저 연(蓮) 꽃 곱기도 하지. 세상이 다 흐려도 제 살 탓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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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7-06 15: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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