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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들 셋을 둔 어느 유목민이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이제 너희에게 내 전 재산인 낙타 17마리를 물려주니, 맏이는 이 재산의 반을, 둘째는 3분의 1을, 막내는 9분의 1을 각각 갖도록 하여라. 당부하거니와, 낙타는 우리 유목민에게는 가장 귀중한 재산이니 분배 과정에서 털끝만큼도 다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너희는 이 아비의 말을 잘 따라 주리라 믿노라.” 

 

낙타 17마리를 분배해야 하는 세 아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타를 유언대로 나누려면 도저히 자연수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만일 정확하게 나눈다면 멀쩡한 낙타 한 마리를 잡아야 하는데, 이런 해결책은 아버지의 유언을 정면으로 어기는 일이 되고 만다. 낙타를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게 하라고 엄명을 내렸는데, 어떻게 낙타 잡는 짓을 할 수 있겠는가.

 

고민 끝에 가까운 이웃 마을의 현자를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했다. 그 현자는 얘기를 듣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자기 낙타 1마리를 끌고 그 세 형제의 집으로 왔다. 현자는 우선 자신이 몰고 온 낙타 1마리를 17마리에 합쳐 전체를 18마리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현자는 유목민의 맏아들에게 9마리를 건네주었다. 전체 18마리의 반은 9마리임을 설명하면서. 둘째 아들에게는 18마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마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막내아들에게 9분의 1에 해당하는 2마리를 나눠줬다. 다 나눠주고 나자 애초에 자신이 끌고 온 낙타 1마리가 남았다. 현자는 이 낙타는 본래 자기 낙타니까 도로 가져간다면서 끌고 되돌아갔다. 

 

이 현자는 말 그대로 슬기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산술적 지식만으로는 풀 수 없는 난제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도록 명쾌하게 해결했다. 관련된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유목민 노인의 유언의 취지를 온전히 살려냈다.

 

관련 정보나 지식이 없이는 사소한 문제조차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단편적인 정보나 지식은 문제 해결의 첫 단추인 셈이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문제는 기존의 지식을 고지식하게 적용하기만 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문제를 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문제를 한층 더 심화시키기도 한다. 어느 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기도 하고,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애초의 문제와 연관된 또 다른 문제와 유착이 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뿔이 비뚤어져서 그 뿔 모양만 똑바르다면 더없이 멋지게 될 소, 누구나 탐내게 될 그런 소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단호한 결단력을 발휘하여 뿔 모양을 멋진 모양이 되도록 바로잡아 놓았다. 아쉬웠던 부분이 충족되었고 이제는 정말 멋진 소로 바뀌었다. 

 

그런데 원래 소의 뿔 모양을 고치는 일은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던지, 뿔 모양은 바로잡았지만, 소가 죽고 말았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을 연상시키는 얘기다.

 

대체로 세상사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고민하는 문제들은 복잡성이나 난이도의 면에서 위 유목민의 낙타 분배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문제의 소재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 자체가 녹록하지 않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있다.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그 방향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켜져야 할 가치가 훼손되거나 간과되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에 관한 평면적 해법 그 자체는 지식일 수는 있어도 지혜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관련하여 진지하고 엄격한 성찰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지혜로 승화될 수 있다. 정보사회, 지식 기반 사회의 시민인 우리는 다채롭고 풍부한 정보나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항상 탐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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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7-19 17: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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