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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의 세계인문기행(10) 원주민 추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시애틀은 보잉, MS 등 세계적인 기업도시
  • 기사등록 2024-01-25 16: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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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획총괄위원장, 전 동아일보기자



 



언론계나 광고계에 취업하고 싶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몇몇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첫 시간이면 학생들에게 그동안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떠올려 보고 그 느낌을 제출하도록 했다. 


 한때 미국 최대 잡지였던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좋은 글로 헬렌 켈러의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선정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1854년 인디언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200만 에이커의 땅을 15만 달러에 팔라고 요구한 미국 14대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스쿼미시 족의 추장 시애틀이 썼다고 하는 편지다. 


     '시애틀'이라는 지명은 스쿼미시 족 추장의 이름에서 따 온 것


“워싱턴의 백인 추장이 우리에게 땅을 팔라고 한다. 이 땅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으며 우리가 주인도 아니다. 신선한 공기, 아름다운 안개, 반짝이는 물, 사슴과 말, 독수리들은 우리 형제자매인데 어떻게 사고판다는 말인가”라는 요지의 내용이지만 편지라기 보다는 우렁찬 목소리의 연설문이다. 


 피어스 대통령도 추장의 이 답신을 보고 감동하여 그 지명에 시애틀이라는 추장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이 땅을 점령한다. 요세미티, 아이오아, 알라바마, 아칸소, 캔자스, 유타 등 수많은 지명과 23개의 주명은 원주민 부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지만 시애틀은 특별히 추장의 이름을 가져왔다. 


인디언의 용맹성을 높이 평가한 미군은 크루즈 순항 유도탄에 원주민이 즐겨 사용하던 도끼 ‘토마호크’를 붙였다. 갈비뼈에 등심이 붙은 고급 정육부분을 토마호크라고 부르는 것도 이 부분이 도끼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요세미티, 코마호크, 아칸소 등도 원주민 부족의 이름에서 따 와 


 파이오니어 공원에는 이곳 인디언의 마지막 추장인 시애틀의 검은 흉상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 토박이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시애틀 추장이 속한 스쿼미시 부족의 종가댁 며느리가 한국 여성이라고 한다. 이 여성은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대학 유학시절 캠퍼스에서 시애틀 추장 후손을 우연히 만나 통성명할 정도로 지냈다.


졸업 후 그 청년은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끈질긴 구애 끝에 성혼에 이르렀으며 결혼식 때는 시댁 가족 친지들이 전세 비행기로 내한했다고 한다. 이 가문은 대지주로서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각종 사회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다소 황당한 러브 스토리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덕분인지 시애틀 하면 낭만적인 도시로 연상되지만, 사실은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도시다. 보잉과 마이크로 소프트, 아마존, 코스트 코, 스타박스 등 유명 기업의 본사가 이곳에 있기에 시애틀은 미국 내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 


   시애틀은 보잉, 아마존, 마이크로 소프트, 스타벅스 등 대표적인 기업도시


 워싱턴 주에 속한 시애틀은 쪽 빛 호수와 검푸른 바다, 녹색 밀림이 어울려 ‘에메랄드 시티’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아름답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나트라와 어깨를 겨뤘던 인기 가수 페리 코모의 히트곡 ‘시애틀’에는 “시애틀 하늘은 여태껏 본 하늘 중 가장 푸르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흐린 날이 맑은 날보다 더 많기는 하지만, 청명한 날의 시애틀 하늘은 진짜 쪽 빛이다. 


시애틀은 샌프란시스코처럼 언덕을 이룬 도시라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 보는 전망이 속세를 저만치 밀쳐내려는 모습이다. 특히 건너편 우뚝 솟은 얼음 보숭이 레이니어 만년 설산(雪山. 해발 4392m)이 비키니 차림의 도시인들에게는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이곳 모든 차량번호판 바탕에는 이 설산이 그려져 있다. 


 워싱턴 주를 '에버 그린 스테이트'(常綠州)라고 부르듯이 시애틀은 삼림이 무성하여 초기에는 목재산업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40여년 전 내가 근무하던 회사도 이곳의 목재를 수입했으며 그런 인연으로 이곳을 출장 방문한 적이 있다. 시애틀은 1890년대만 해도 인구 4만 정도의 천혜의 양항(良港)이었는데, 캐나다와 알라스카의 금광개발로 골드러시의 중계지가 되어 부자도시로 탈바꿈 했다. 북태평양의 관문인 시애틀은 동아시아권과 가까워 무역이 활발해짐으로써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보잉이 기침하면 시애틀이 독감 걸린다"고 할 정도


 특히 2차 대전 후 항공기 산업의 보잉이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첨단산업의 메카가 되었다. 한때 “보잉이 기침하면 시애틀이 독감 걸린다”는 말이 성행할 정도로 보잉은 이 도시의 대표 기업이었다. 현재도 보잉은 세계 상업항공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적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이 연합해서 만든 항공사가 에어 버스이다. 


 시애틀에 머무른 5일 일정 중 가장 먼저 한 일은 90분 동안 보잉사의 비행기 제조공장 투어에 합류한 것. 보잉사 셔틀버스가 예약자들을 모두 픽업하여 30km 떨어진 에버렛 본사에 도착하자, 저 멀리 광활한 계류장에는 출시를 기다리는 각국 비행기 행렬이 국제공항처럼 느껴졌다. 그 대열 속에 푸른 색 대한항공도 선명하게 보인다. 


747, 777, 787 등 민항기 공정 투어인데도 보안이 너무 철저하여 핸드폰을 비롯한 모든 소지품을 맡겨야 한다. 한꺼번에 15대의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길이 800m의 세계 최대 공장 속에 들어가, 위에서 비행기 제조공정을 내려다 보니 작업하는 인부들은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에 온 것처럼 작아 보인다. 키 122cm 이하는 입장을 제한한다는 안내설명에 의아해 했는데, 견학로의 턱이 높아 저 아래 공정을 내려다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잉, 세계 상업항공기 시장의 절반 차지, 이에 맞서려고 유럽의 에어버스 생겨 


 보잉의 비행기 박물관에는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기부터 우주왕복선, 첨단무기까지 각종 비행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케네디로부터 닉슨까지 대통령의 하늘 집무실이었던 에어포스 원이 은퇴하여 쉬고 있다. 일반 비행기와 다른 점은 특수 통신설비가 장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1위 자리를 연속 지키고 있는 빌 게이츠는 시애틀 토박이다. 게이츠 미란다 재단은 미국 전체 자선재단의 40% 이상을 차지하므로 사회개혁운동에 영향력도 크고, 그만큼 존경받을만 하다. 언젠가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에 대해 “오늘 나를 있게 한 것은 하버드대학 졸업장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며, 고향 시골마을의 조그만 도서관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실제로 10살이 되기 전 백과사전을 독파했으며, 학교 독서경진대회서는 1등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어렸을 때 그는 골방에 처박혀 바깥에 나오질 않아 어머니가 찾아가면 책 속에 묻혀서 “지금 생각중이에요”라고 엉뚱한 답변을 하곤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갔으나 의사도 “그는 통제불능이니 부모가 양보하세요”라는 답변만 들었다. 빌 게이츠와 MS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 자본주의 출판 미디어 선구자인 포브스 등 명사를 배출했던 레이크 사이드 스쿨은 올해 시애틀 도심에 분교를 세운다고 한다. 


     시애틀 출신 빌 게이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건 시골마을 조그만 도서관"


 원래 일정에 없던 마이크로 소프트를 애써 찾아간 것은 빌 게이츠의 체취를 맡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기업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하면 고층 빌딩으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사세를 과시하는데 비해, MS는 캠퍼스 같은 5층 짜리 사옥으로 학구적인 분위기를 선도했던 기업이어서 남다른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MS 본사는 131개의 캠퍼스 빌딩이 숲 속에 타운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 4만 7천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고 하는데 유난히 인도계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미국은 세계 인재들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특히 IT분야는 인도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구글과 어도비(Adobe)의 CEO도 인도출신이다.


 지난 2014년 신생 IT기업들에 눌려 ‘한 물 간 공룡’이라고 조롱을 받던 MS를 구하기 위해 등판한 인도인 CEO 사티아 나텔라는 팀 중심의 조직문화 변화를 주도하여 취임 당시 35달러이던 주가를 요즘은 100달러로 끌어올리고 있다. 

 

   1962년 세계박람회 개최 기념물인 스페이스 니들은 시애틀의 랜트 마크


 시애틀은 락 음악의 메카라 할 수 있다.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락 밴드 러바나가 이곳 출신이다. 왼손잡이였던 헨드릭스는 기타 줄을 거꾸로 장착해서 독특한 방식의 연주를 끝내고는 기타를 부셔버리는 기행(奇行)을 일삼았다. 전자기타의 새로운 영역을 연 지미 헨드릭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마이크로 소프트의 폴 앨런은 대중문화 박물관(Museum of Pop Culture)을 시애틀 센터역 근방에 헌사했다. 


부셔진 기타를 형상화 한 이 멋진 건물의 설계자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을 받은 프랭크 게리이다. 지미 헨드릭스처럼 왼손잡이 기타리스트인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독일 호프너 악기상에서 구입한 대칭구조인 베이스 기타를 즐겨 사용했는데, 1969년 런던에서 도난당한 후 그 애장품을 찾기 위해 150여억원의 현상금을 걸고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1962년 세계박람회 개최 기념물인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은 시애틀의 랜드 마크이다. 꼭대기가 둥그렇게 우주선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시애틀이 한 눈에 들어온다.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보인다(登泰山 小天下)’라던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1년에 두 달만 얼굴을 보여준다는 레이니어 설산이 신기루처럼 어른거린다. 전망대 바로 아래층은 24분마다 한 바퀴씩 도는 회전식당이 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이곳에 초청하여 아름다운 저녁노을에 와인 잔을 부딪치면서 프로포즈하면 100% 성공한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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