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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현대인 대다수는 도시에서 생활한다. 어디에 가든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대부분의 일들이 낯선 사람들과 이루어진다. 아는 사람들과 교유하는 일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 ‘아는’ 정도는 대단히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다. 이른바 익명성(anonymity)은 현대 사회의 본질적 특징을 단순 명쾌하게 말해주는 단어다.

 

이런 특징은 현재 우리나라 행정 단위의 ‘리(里)’ 수준의 생활과 비교해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기껏해야 인구가 150명 규모인 ‘리’(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서로 깊숙이 안다. 흔한 말로 이웃집 숟가락 수를 헤아리는가 하면 남의 집 3대의 가정사까지 모두 꿰고 있다. 혈연으로 전혀 무관한 사이더라도 한마을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진한 동질감을 공유하면서 공동체적 분위기 속에서 생활한다. 

 

물론 오늘날 한국에서 이런 분위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비율이 매우 작다. 국민 대부분이 도시민으로서 살고 있다. 도시민 중에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시민으로 사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도시 생활의 현저한 특징인 이런 익명성은 다른 심각한 문제로 연결된다. 개인이 서로 잘 아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집단의 눈길이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되면 불특정 다수의 한 구성원이 된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레 개인의 행동은 감추어진다. 결국 자기의 행동에 대한 개인적 책임도 피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마술처럼 익명성이 은폐 가능성으로 전환되고 만다.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소한 무례함에서 엽기적이고 끔찍한 범죄까지 바람직스럽지 않은 행동은 익명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든 작든 비리나 부정이 저질러지는 바탕에는 그런 행동을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 그래서 끝끝내 덮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행위자의 얼굴이 가려진다고 여겨지면 크고 작은 온갖 악행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요즘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가 설치된 모습과 CCTV를 통해 범행이나 비행이 폭로되었다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동에서 교통사고 위장 사기 행각에 이르기까지 CCTV가 현장을 찍어두는 것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CCTV에 대해, 일부에서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까지 인용하면서 선량한 시민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못된 짓을 막거나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을 족집게처럼 잡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CCTV의 위력을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이제, 이런 실제의 유형적 CCTV 말고 무형의 CCTV에 대해 생각해 보자. 흔히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양심은 성능 면에서 첨단 CCTV보다 더 강력하다고 볼 수도 있다. CCTV는 설치된 일정 구역의 한정된 시간의 이미지를 기록하는 데 그친다. 영상의 선명도가 흐린 경우도 많다. 

 

양심은 이와 다르다. 일단 작동하기만 하면, 아직 또렷한 모습조차 갖추지 않은 마음 한구석의 작은 욕심까지 날카롭게 짚어내어 주인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준엄하게 질책한다.

 

무형적 CCTV로서의 양심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인격의 고결함과 저속함에 따라 그 예민성의 편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고매한 인격자는, 그의 양심이 탐조등처럼 밝아서 사소한 오류나 흠결도 다 드러내므로, 결국 본래의 선한 자기로 돌아가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라기보다 오히려 짐승에 가까운, 도덕적 둔감성을 지닌 사람의 양심은 어둡기가 그지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처럼 어둑한 양심이나마 작동 스위치가 꺼져 있는 경우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유교에서는 마음을 올곧게 하는 방법으로 신독(愼獨)을 강조한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는 말이다. 인격을 수양함은 실제 혼자 있을 때도 혼자만 있다고 여기지 말고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여기고 조심하라는 뜻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자기의 내적, 외적 모습을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성찰적인 나’를 상정하고 행동하라는 요구다. 항상 도리와 양심을 행동의 인도자로 삼아 그 도리와 양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사회적, 국가적으로는 비리나 범행을 방지, 억제하고 범죄자를 잡아 내기 위해 필요할 경우 성능 좋은 CCTV를 여기저기 설치하는 게 좋겠다. 또 한편으로, 우리가 존엄성을 지닌 인격체로서 마땅히 높은 도덕성과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마음의 무형적 CCTV라고 할 수 있는 양심이 항상 힘차게 작동할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내면의 CCTV, 양심의 스위치를 늘 켜놓자! 우리가 이성과 양심의 명령에 따르려고 꾸준히 노력할 때, 각 개인들의 삶은 더욱 인간다워지고 우리 사회 또한 더욱 따뜻하고 건전한 곳으로 발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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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2-15 10: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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