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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획총괄위원장, 전 동아일보기자





애틀의 대명사는 뭐니뭐니 해도 세계 최대의 다국적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아닌가 한다. 하워드 슐츠 회장이 가장 좋아한다는 화산지대 유기농 재배의 프렌치 수마트라 커피라도 한 잔 마셔볼까 기대를 하고 스타벅스 1호점을 찾아갔더니 관광객들로 장사진이다. 스타벅스가 자랑하는 ‘가정의 베란다를 확장한 곳’이라든가 'writer`s paradise' 등과는 거리가 먼, 초창기 커피 도매상 모습 그대로 낡고 비좁은 가게였다. 

 

차분히 앉을 자리는 아예 하나도 없고, 다들 기념품을 사기 위해 벅적거리는 도떼기시장이었다. 아내는 선물용으로 스타벅스 1호점 로고가 박힌 텀블러 보온병 4개를 사서 겨우 빠져나왔다.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게 관행인 버스킹 팀이, 아예 스타벅스 입구로 자리를 옮겨 피아노 연주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스타벅'은 허만 멜빌의 소설 <모디딕>에 나오는 1등 항해사의 이름


 스타벅(Starbuck)은 원래 허만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일등항해사 이름이다. 미국소설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오야의 모험>을 시작으로 미국소설은 모험적인 스토리가 주류였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모험소설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모비딕>이다. 

 

모비딕은 사나운 향유(香油)고래 모차딕을 변형시킨 이름이다. 우리나라는 ‘흰 고래’라는 뜻의 <백경(白鯨)>으로 번역되어 있다. 고래에게 한 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의 빗나간 복수심이 포경선을 비극으로 몰고가지만, 커피를 유난히 좋아했던 스타박은 유일하게 이성을 갖춘 선원으로 묘사되어 있다. 

 

 피 애호가인 제리 볼드윈, 고든 보커, 지브 시글 등 3명의 친구가 1971년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시장통에 커피점을 열면서 상호를 1등항해사인 '스타벅의 커피점(Starbuck`s Coffee)'이라고 붙인 것이다. 스타벅과 같이 커피 좋아하는 세 사람이 모였다고 해서 복수인 S를 붙여 스타벅스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창업자 중에 멜빌을 좋아한 영어선생 출신의 볼드윈이 제안했다고 한다. 

 

프랑스 명감독 장피에르 멜빌도 본래 이름은 그룸바하였으나 이 소설을 좋아해서 작가의 이름으로 개명한 것이다. 기존의 아메리칸 커피가 우리의 숭늉처럼 묽은데 비해 스타벅스의 원두커피는 독특한 향과 맛을 선보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타벅스는 에스티 로드와 함께 광고 대신 샘플로 브랜드를 키운 대표기업이다. 

 

 스타벅스가 미국은 물론 해외로 널리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옛날 바이킹들이 무사항해를 기원하며 뱃머리에 새겨오던 요정 사이렌을 회사 로고로 차용했다. 초기의 로고 인어상에는 가슴을 드러내고 두 꼬리를 양쪽으로 들어올리는 모습이었으나 몇 차례 변화를 거치면서 머리칼로 가슴을 가리고 아랫부분은 없애는 등 단순화 했다. 1호점에는 아직 단순화 되지 않은 옛 모습의 로고가 남아있다. 

 

 즘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시장에 관광객이 몰리고 유명해진 것은 스타벅스1호점 덕분이다. 초창기 상인들은 추운 새벽에 스타벅스의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열었다. 서민 커피로 시작한 스타벅스가 차츰 차별화 전략을 구상, 맥도날드나 던킨도너츠가 커피 한 잔에 1달러일 때 그 4배를 받아 ‘포박스(fourbucks)'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Call me Ishmael"로 시작하는 특이한 문체의 소설 <모비딕>은 작가 생전에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생계유지도 만만치 않은 그는 푼푼이 돈을 모아 자비로 25권씩 소설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을 일단 붙잡으면 좌골신경통이나 요통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주변에 과대 선전했지만, 소설은 별로 인기가 없었고, 작가의 비참한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가난하고 이름 없는 작가로 살다가 그의 고향인 뉴욕의 평범한 공동묘지에 누워있다. 사후에 작품의 진가가 드러나 유명해진 사람으로 미술계에 고흐가 있다면 문학계는 멜빌이 아닌가 한다. 작품 속의 주인공 이름인 스타벅스가 생전에 이렇게 흥행했다면 그 로열티만으로도 풍족한 여생을 즐겼을 텐데. 허만 멜빌을 기리는 징표라도 있었으면 한다. 

 

 내가 미국 여행 중이던 5월 29일 스타벅스는 미국 내 8천여개의 직영매장 문을 닫고 직원 17만5천명을 대상으로 4시간 동안 반(反)인종차별 교육을 실시했다. 스타벅스는 최근 필라델피아 한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매장에 앉아 있는 흑인 남성 2명을 경찰에 신고, 체포하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흑인 남성의 화장실 사용을 거절해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번지기도 했다. 이날 하워드 슐츠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 인종차별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했다. 평소 반 트럼프에 앞장선 슐츠는 차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요즘 시애틀을 쥐고 흔드는 기업은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회사 아마존


사실 요즘 시애틀을 쥐고 흔드는 기업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 아마존이다. 총 34만 사원 중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 주재하는 4만 여 명이 지난 7년간 받은 급료는 29조원, 아마존과 관련 업무로 사용한 호텔 객실이 23만 3천여실이나 된다고 한다. 시애틀이 아마존 덕분에 대표 기업도시로 성장했지만, 반면에 치솟은 월세로 인해 노숙자도 크게 늘어났다.

 

 급성장하는 아마존은 시애틀의 둥지가 너무 비좁아서 최근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제2본사 신청을 받았는데 미국 뿐 아니라 이웃 캐나다와 멕시코 등지의 238개 도시가 러브콜을 보내왔다. 피닉스 같은 도시는 아마존으로 도시명을 바꾸겠다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마치 일본의 소도시 고로모(擧母)가 토요다 자동차를 유치하면서 그 회사 이름을 도시명으로 받아들인 것과 같다. 치열한 경합 끝에 현재 제2본사의 우선 협상 도시는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로 알려지고 있다.

 

 “아마존의 창업자 베조스에게 PT보고하는 것은 태형을 맞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내가 아마존 본사를 찾아가면서 다소 긴장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회사 입구 광장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바나나를 나눠주는 아마존 안내 여성의 상량한 웃음을 접하자 괜한 기우라는 걸 알았다.

 

 마존에 들어가서 실제로 감동을 받은 것은 입구 안내데스크 앞면에 새겨진 'Invictus'라는 단어였다. 라틴어로 ‘불굴’이라는 이 말은 아마존이 2016년 2월 인도 방갈로르에 진출기념으로 작명한 코드명이라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그러나 이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넬슨 만델라가 떠올랐다. 넬슨 만델라는 언젠가 오프라 윈프리와의 대담에서 “27년 간 어떻게 그 열악한 감옥살이를 견뎌냈느냐?”는 질문에 “매일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Invictus'를 낭송하면서 위안을 얻었다”고 대답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시낭송은 위안과 치료효과가 있다고 한다. 

 

1826년 러시아 개혁운동을 주도하다 실패한 젊은 장교 데카브리스트들은 바이칼호 근방에서 유배생활하면서 밤이면 정치토론과 시낭송을 했으며, 유신독재시절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된 많은 지성인들이 양성우의 장시 ’겨울공화국‘을 외웠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된 지성인들이 양성우의 시 '겨울공화국'을 암송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2009년 제작한 넬슨 만델라 일대기 영화제목도 ’인빅투스‘였으며,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상이군인 올림픽 제전도 ’Invictus Game' 이라고 한다. 

 

 이 시에는 “나를 감싸고 있는 칠흑 같은 암흑/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같은 구절이 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아마존의 경영의지가 아닌가 한다.

 

 온라인 매장의 황제인 아마존이 2016년 초 계산대와 계산원이 없는 무인 오프라인 매장 ‘아마존 고’를 세계 최초로 시애틀에 열었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사람 눈처럼 주변을 살피는 컴퓨터 비전 등 첨단기술이 총 동원된 미래형 가게였다. 매장에 수백대의 카메라를 배치해서 고객이 상품을 집어 들고 나오면 얼굴인식 기술을 통해 아마존 앱의 스마트폰에서 자동 출금이 되는 것이다. 

 

집었던 물건을 도로 제자리에 갖다 두면 환불처리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매장대 앞에 줄을 설 필요가 없는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은 성공하지 못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좋은 상품을 값싸게 사는 것이지 계산대 앞의 시간허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했을 때 책방들이 줄도산했던 것 처럼 아마존이 진출하는 분야마다 기존체제가 무너지는 현상을 나타내는 신조어 ‘amazoned(아마존에 의해 파괴되다)’가 등장했다. 아마존의 회원이 4천만명을 넘었으니 이 거대한 함대가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자못 궁금하다.


  시애틀의 또 다른 명물인 수륙양용차 '라이드 덕'을 타고 수상가옥에 가보라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시카고서 아내를 잃은 톰 행크스가 비가 자주 오는 시애틀로 이주, 아들과 함께 수상가옥에서 잠 못 이루며 외롭게 지내고 있는 내용이다. 시애틀의 또 다른 명물인 수륙양용차 라이드 덕(Ride Ducks)을 타고 실제로 수상가옥에 가까이 가보니 그동안 우리가 접했던 동남아의 서민층 주거지와는 달리 호화판 주택이었다. 정원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집집마다 요트가 있고 탁트인 바다가 시시각각 아름다운 시야를 연출한다. 

 

 워싱턴 호수와 유니언 호수에서 목재를 싣고 바다로 나오기 위해 1907년에 건설한 하이렘 운하에는 연간 11만 척의 배가 이동하고 있으며, 이제는 화물선 대신 각양각색의 화려한 요트가 줄을 서고 있다. 110년 전 운하 건설 때 연어의 이동길까지 별도로 마련해준 자연친화의 지혜가 놀랍고 부럽다. 지하통로에서는 산란을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나는 시애틀의 화창한 날을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는 아내와 숙면을 취했다. 나에게 시애틀은 ‘잠 잘 이룬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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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2-20 20: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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