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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공자는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하얗게 만든 다음에 해야 한다는 것이야.”라고 대답했다. 이른바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고사성어의 배경이 된 ≪논어≫의 한 대목이다. 

 

공자의 대답은 대충 이렇게 해석된다. 그림을 그릴 때 하얀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 바탕이 얼룩덜룩하다면 설령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올바로 표현할 수 없다. 밖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예(禮)보다 오히려 그 예의 본질인 어진 마음(인, 仁)이 중요하므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그것의 본질이 갖춰진 다음에라야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를 거쳐 고도의 정보 사회로 진입하면서 전통 사회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엄청나게 많은 분야와 직업이 생겨났다. 이런 추세에 따라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다종다양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제한된 어느 분야의 제한된 기능이나 역할조차 온전히 수행하려면 장기간의 교육과 훈련을 거쳐야 한다.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전문 지식이나 고도의 기능을 요구하다 보니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점차 능력 본위가 되어가는 경향이다. 특정 분야 특정 직책이 요구하는 기능이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가가 인간 평가의 절대적인 잣대가 된다. 인성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어도 특정 분야의 일을 잘할 수 있다면 된다는 생각이다. 

 

거칠게 말해, 패륜적 수준만 아니라면 재간이 뛰어나면 ‘만사 오케이’란다. 인재의 평가, 선발 과정에서 개인의 인성적 요소, 인격적 측면은 사실상 부차적인 요소로 간주되는 것 같다. 물론 대학입시에서조차 인성적 요소를 고려한다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할수록 인성, 인격은 점점 더 뒤로 밀리는 평가 요소가 돼가고 있다. 

 

이런 거대한 흐름에 제동 걸기는 쉽지 않다. 인성, 인격적 측면을 평가, 판단하기가 실제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상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사람의 됨됨이를 제대로 알아보는 일이 아닌가. 또한, 평가하는 사람 자신은 인성적, 인격적 측면에서 얼마나 우월하기에, 하는 반문도 튀어나온다. 다른 측면에서는 몰라도 인격적인 면에서는 사람들이 다 거기에서 거기, 비슷한 수준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여러 주장은 인성, 인격의 중요성에 대한 반론으로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정상적이고 온전한 인성을 갖추는 것, 나아가서 훌륭한 인격을 구비하는 일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개인들을 향해 특정의 기술이나 재능을 지니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고 옳지도 않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평생을 통해 더욱 인간적인 인간, 더욱 고상한 인격을 갖추도록 노력하라고 요구, 권유할 수는 있다고 본다. 

 

훌륭한 인격을 추구하는 일이 왜 보편 타당한 요구사항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인격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절대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동물은 동물로서 태어나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생존, 번식하다가 죽는다. 인간은 외형상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인간성’의 기준에서 보면 대단히 불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나는 존재다. 인간다움은 인간이 평생 그것을 향해 수렴해 갈 수 있을 뿐이고 손쉽게 닿을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예로부터, 특히 동양 사회에서는 인격(자아) 완성을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로 여겼으며 당연히 인격 수양을 중시했다. 인격의 수준이 동물의 수준을 아슬아슬하게 면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고매한 인격, 군자다운 심성을 내면화 할 수 있도록 자신을 교육, 연마하는 일을 평생의 과제로 여겼다.

 

독일 문호 괴테는 “이 세상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진정한 인격자가 되는 데 있다.”라고 갈파했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려면 참된 인격자가 되라는 말이다. 모든 걸 효용과 기능 위주로 평가하는 세태이고 이런 경향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다움을 지닐 때 비로소 존엄한 인간 존재가 됨은 항상 명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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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3-07 17: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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