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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획총괄위원장, 전 동아일보기자






천에서 로스엔젤리스까지 11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갇혀 있다가 톰 브래들리 터미널을 빠져 나오자마자 답답한 가슴을 열기 위해 근처 가장 가까운 레돈도 해변으로 달려갔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 쇼핑 거리와 식당들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석양의 금빛 바다에서는 스쿠버 다이빙, 서핑, 스노클링, 카약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노을이 진 해변 입구에 조지 프리스라는 청년의 흉상이 있기에 자세히 다가가 보니, 하와이 출신 서퍼로서 1907년 이곳 레돈도 비치에서 서핑을 즐김으로써 미 대륙에 서핑을 소개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핑은 하와이, 뉴질랜드, 하이티 등의 원주민인 폴리네시아인들의 전통 민속놀이에서 나온 것이다. 2019년 3월 캘리포니아 주 하원은 “금빛 파도를 타고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서핑이야말로 캘리포니아 꿈을 대표한다”면서 서핑을 캘리포니아 공식 스포츠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서핑을 캘리포니아 주의 공식 스포츠로 지정


미국의 많은 주들은 지역 전통과 특색에 따라 공식 스포츠가 있는데, 알라스카는 개 썰매, 메릴랜드는 말 위의 창 시합, 미네소타는 아이스하키, 하와이의 서핑 등이다. 이에 대해 LA타임스는 “장비 구입비가 서핑의 10%밖에 안 되고 즐기는 인구도 훨씬 많은 스케이트 보딩을 대표 스포츠로 정해야 한다”며 반대 여론을 펴고 있다.


 이튿날은 태평양 연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산타모니카를 찾았다. 산타모니카는 ‘미국의 신작로’라고 일컫는, 시카고에서 서부 연안까지의 3954km 대륙횡단 길인 66번 도로(US Route 66) 종착점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등장하는 오클라호마 노동자들의 고행길도 바로 66번 도로이다. 


새로 만든 길이라는 뜻의 신작로(新作路)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일제의 수탈 현장인 군산에서 전주까지 새로운 도로를 완성했을 때이다. 지금은 봄이 되면 ‘100리 전-군 벚꽃길’ 축제를 즐기지만, 호남 곡창의 빨대 역할을 했던 이 길의 역사를 알면 “이 길을 달리며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소설가 조정래의 말에 공감이 간다.


산타모니카 해변은 미 서부에서 가장 오래된 110년 전의 목재로 된 부두가 그대로 있어서 미국 역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길게 이어진 부두 위에서는 노래와 춤, 라이브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1년 중 300일 이상이 따뜻하고 맑은 휴양지라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모여들지만 워낙 백사장이 길고 넓어 피크철에도 그렇게 붐비지 않는다. 


우리의 해운대는 ‘물 반 사람 반’에다 백사장을 가득 메운 7937개의 비치파라솔이 2018년 기네스북에 올라 있지만, 이곳은 온 몸을 태양에 맡기는 썬 키스트(Sun Kissed)족들이라 차양산(遮陽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산타모니카는 온화한 청정지역이라 원래 요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때 미키마우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뽀빠이 만화 작가 E. C. 세가는 백혈병과 간질환 요양차 산타모니카에 머물면서도 만화를 몇몇 신문에 계속 연재했다. 1938년 43세로 별세하자 독자들의 성원을 외면할 수 없어서 그의 문하생들이 한동안 시금치를 즐겨 먹고 굵은 팔뚝으로 힘자랑하는 뽀빠이를 이어가야 했다.


             보디 빌딩의 성지인 골드 체육관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지사


 산타모니카의 남쪽에 맞닿아 있는 베니스 비치는 재력가 애버트 킨니가 베니스 처럼 운하를 파서 개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보디빌딩의 성지인 골드 체육관이 있다. 보디 빌더의 전설인 조 빌더가 1965년 자신이 고안해낸 근육강화 기구를 갖춘 피트니스 센터를 열고 매년 보디빌딩 챔피언, 즉 미스터 올림픽을 선발하는 콘테스트를 연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6년 연속 보디빌딩 챔피언에 등극했으며, 실버스터 스텔론, 멜 깁슨,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맨, 매직 존슨 등이 이 체육관 출신이다. 골드 체육관은 이미 전 세계로 지점을 확산하고 있으며 전설의 1호점에는 ‘보디빌딩의 메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골드 체육관은 홍보를 위해 인파가 많은 산타모니카로 진출하여 머슬 비치(Muscle Beach)라는 운동공간을 마련, 역기 대신 반나(半裸)의 글래머 여성을 들어 올리는 이벤트를 벌이면서 식스 팩 근육을 자랑하곤 했다. 


 

 산타모니카의 산 정상에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 게티센터가 있다. 브렌우드 언덕 3만평 대지에 6개의 독립건물이 서로 다른 축으로 분산 배치되면서 유기적 결합을 이루어 ‘21세기 문화의 파르테논 신전’이라고도 한다. 주차장에서 멋진 트램을 타고 아름다운 숲을 1km 정도 올라가면 박물관으로 연결된다. 이 모든 것이 무료이니 독지가 폴 게티를 향한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53년 포츈지가 선정한 미국 제1위 부자이자 1966년 기네스북이 세계 최고 부자로 선정한 석유왕 폴 게티는 11살 때 오클라호마주로 여행 도중 사들인 땅에서 후에 유정(油井)이 발견됨으로써 부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사막지대의 베드윈족과 친교를 맺어 중동석유의 시추권을 확보했으며, 기름을 실어나를 유조선을 주문한 첫 선주이기도 하다. 


그는 기업경영과 함께 서화나 골동품 매집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문 감정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안목으로 직접 구매하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에서 100만불 이상의 귀한 골동품을 어리석은 판매자가 19불을 요구하자 1시간 흥정 끝에 11불 23센트에 구입했다고 자랑하곤 했다. 


             산타모니카 산 정상에는 세계최대의 미술관 게티 센터가

 

 1970년대 시칠리아의 아이도네에서 도난당한 장엄하고 아름다운 기원전 5세기의 조각작품 ‘모르칸티나 비너스(아프로디테)’가 1988년 이곳 게티 미술관에서 발견되어 미술계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이탈리아는 외교적, 국제사법적 방법 외에 작품의 소재인 석회암 성분까지 분석하여 시칠리아 제품이라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게티 센터는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 기념해인 2011년 시칠리아 아이도네 박물관에 돌려주었다. 게티센터는 이같은 절차를 통해 가장 많은 47점의 귀중품을 외국에 반환해주어야 했다.


 게티는 대를 이을 아들이 마약과 알콜 중독자로 타락해버리자 손자를 애지중지하여 후계자 교육을 특별히 시켰다. 그런데 1973년 7월 10일 마피아 조직인 은드랑케타가 이탈리아 체류중인 게티의 16살 손자를 납치, 17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하자 그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범죄단은 손자의 귀를 잘라 신문사에 보냈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세계서 가장 유명한 부자 구두쇠’였다.


 “나는 손자가 14명이다. 만약 납치범에게 1페니라도 주었다가는 14명 모두 납치당할 것이다”라고 거절했지만 물밑으로 300만달러에 합의했다. 그의 며느리 게일을 통해 세금공제가 가능한 금액인 220만불은 지불하고 나머지 80만 달러는 아들에게 연리 4%로 빌려주는 계약을 맺었다. 게티의 경호원도 사실 범죄단의 일원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손자를 구해내는 드라마틱한 게티 가족사의 스토리를 2017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한 영화가 ‘세상의 모든 돈(All the Money in the World)’이다.


 “자신의 재산이 얼마인지 셀 수 있다면 진짜 부자가 아니다”라고 했던 게티는 5번 이혼을 하고 방이 72개나 되는 저택에 살면서 공중전화를 곳곳에 설치하여 동전을 넣고 전화를 하도록 했다. 심지어 간단한 속옷은 세탁기 대신 자신이 직접 빨래를 할 정도로 근검절약 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세계의 유명 예술품을 수집했으며 1976년 5월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30조원이 넘는 돈을 사회에 기탁했다. 

 

 게티센터가 유명해진 것은 게티가 평생 수집한 희귀한 예술작품의 무료관람 뿐만 아니라 ‘백색의 귀재’ 리차드 마이어가 이 미술관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최연소 수장자이며, 수상식장에서 “순결의 상징인 흰색은 자연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다”라고 주장했듯이 그의 모든 건축물은 흰색 뿐이다. 그런데 게티센터는 건축주의 강한 요구에 타협안으로 일부 오렌지색 건물이 들어있다. 


15년의 공사기간에 무려 1조5천억원이 들어간 게티센터는 예술품과 건축물, 그리고 조경까지 3박자 모두 뛰어난 복합문화공간이다. 우리나라에 리차드 마이어 설계 건축물은 강릉에 씨마크호텔과 솔올미술관이 있으며, 몇 년 후‘쉐라톤 팰리스 강남’ 부지에 마이어의 최고급 주거단지인 ‘더 팰리스 73’이 들어서면 2개동의 백색타워가 강남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게티 센터에는 고대서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빈세트 반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그린 ‘아이리스’가 가장 인기다. 먹을 품고 있는 붓과 같다고 하여 우리는 ‘붓꽃’이라고 부른다. 고흐는 병원 창 너머 뜨락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파란색 붓꽃을 그리면서 유독 한 송이만 하얀 백일점(白一點)으로 돋보이게 처리했다. 


홀로 외로우면서도 당당한 기품을 잃지 않으려는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서 겨우 생활비 보조를 받고 있는 처지라 모델을 살 돈이 없어 자화상과 꽃밭만 그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이런 그림 한 점이 600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LA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리피스 전망대는 야경이 절경


 산타모니카 산맥 동쪽 자락의 그리피스 전망대에 가면 LA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특히 밤이면 하늘의 별빛과 함께 도심의 야경이 절경이다. 2016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에서 라이언 고슬링과 에마스톤이 별빛 아래 멎진 왈츠를 춘 곳도, 1955년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젊은이의 우상인 제임스 딘이 칼부림하던 장소도 이곳이다. 


<이유 없는 반항> 개봉 직후 교통사고로 24세에 요절한 제임스 딘의 흉상이 저 멀리 'HOLLYWOOD' 사인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기에 포토 존으로 안성맞춤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친구 살 미네오는 37세 때 피자 배달원에 살해 당하고, 여자 친구 나탈리 우드는 43세 때 익사체로 발견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커다란 돔형의 우주 관측소 안에 지구 자전을 보여주는 푸코의 진자가 천정에서 60m 추로 매달려 있다. 바깥에는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 등 많은 과학자들의 모습과 해 시계를 비롯한 우주 천체의 움직임과 관련된 과학기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1896년 그리피스 대령이 자신 소유 토지를 모두 LA시에 기증하자 시 당국은 사유지 일부를 매입하여 미국 최대의 도심공원을 조성했으며 그 중심에 그리피스 천문대가 있다. 특히 공원으로 오르는 숲길의 자전거 트레일 코스는 바이커들의 로망이다. 그리피스는 말년에 아내와 다툼 끝에 총으로 아내에게 중상을 입혀 살인미수죄로 곤욕을 치루었기에 그의 멋진 기부가 빛을 잃고 있다는 인상이다. 


 미국 제2의 도시 LA는 부산을 비롯하여 세계 20개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자매도시의 방향과 거리표시를 나타내는 화살표 기념물이 시청 앞에 세워져 있는데, 부산까지는 6176마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매도시 기념관에는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의 자수병풍과 거북선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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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3-15 17: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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