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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떤 사람이 지옥과 천당을 차례로 방문했다. 지옥 입구에는 “식사할 때는 반드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할 것.”이라는 큼직한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사람들 앞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놓여있는데, 문제는 이 숟가락과 젓가락이 사람의 팔보다도 훨씬 길다는 것이었다. 이런 도구를 써서는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방 여기저기에는 흉측한 모습의 도깨비가 눈을 부라리고 서 있다가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사람이 보이면 날카로운 채찍으로 사정 없이 후려 갈겼다. 

 

그러니 이들 앞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은 차라리 고문에 가까웠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다가 채찍으로 맞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몸은 온통 채찍 자국에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몰골이고.

 

이번에는 천당을 방문했다. 천당 입구에도 지옥 입구와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방의 크기나 높이, 실내 장식, 수용 인원 등 모든 면에서 지옥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식탁과 식탁에 놓여있는 숟가락과 젓가락 역시 지옥과 똑같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사람의 팔보다도 훨씬 길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한없이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게 아닌가. 사나운 모습의 도깨비들은 방구석에 앉아서 졸고 있고. 

 

자세히 살펴보니, 천당 사람들은 식사할 때 모두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했다. 다만, 자기 앞의 음식을 자기가 먹지 않고 팔보다도 긴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서로 먹여주었다. 감시역의 도깨비가 별로 필요 없는 것은 입구에 붙여 놓은 경고문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얼른 끌어낼 수 있는 교훈은, 한 사회에서 모든 개인들이 오로지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그 자기 이익조차 제대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극단적 이기주의로 무장할 때 그 결과는 자타공멸에 이르게 된다.

 

또한, 이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요소들은 어디에나 존재함을 말해준다.

언뜻 생각하면, 천당이나 그에 비할 정도로 좋은 사회에는 사람들의 삶을 제약하는 요소가 없을 듯하다. 지옥이나 이에 맞먹을 만큼 최악의 사회라면 몰라도. 

 

그런데, 위 이야기로 보면(당초에 그렇게 꾸며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옥이나 천당이나 제약 요소는 똑같이 존재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쓰지 않고 먹거나 그 길이가 음식 먹기에 적당하면 좋을 텐데, 무조건 팔 길이보다 긴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삶을 이리저리 옥죄는 요소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가로 말하면, 환경은 쾌적하고 땅 덩어리는 넓으며 천연자원이 풍부하면 좋을 것이다. 이웃 나라들도 말 그대로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국가들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허황한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로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은 우리의 의지나 희망과는 무관하게 여러 면에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모저모로 불편하도록 이루어져 있다. 선택의 폭 역시 그다지 넓지 않다. 

 

결국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낳는 것은 이런 제약 요소에 어떤 마음가짐(mind-set)으로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천당 사람들은 팔 길이보다 더 긴 숟가락과 젓가락을 쓰면서도 상호 신뢰의 긍정적 마음가짐과 상호 협력의 정신으로 공존, 상생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괴롭히는 여러 제약의 사슬을 어떤 사고방식과 태도로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한 사회나 국가가 전연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마음가짐에 따라, 그리고 지혜를 잘 발휘한다면 냉혹하고 불편한 현실도 천국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우리에게 큰 위안과 희망이 되는 결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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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6-28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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